[장아림의 여행일기 (10)] 우즈베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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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아림의 여행일기 (10)] 우즈베키스탄
  • 장아림 치과위생사
  • 승인 2021.05.2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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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의 유례없는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해 감염 위험성이 극도로 높아지면서 바깥 활동이 망설여지는 답답한 시기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이런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이른바 ‘코로나 블루’라 불리는 우울증과 무기력증, 과도한 불안감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현상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처럼 한정된 공간만큼 마음마저 움츠러들 수 있는 독자들에게 여행의 대리만족과 추억을 통해 조금이나마 위안을 선사하고자 장아림 치과위생사의 여행일기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편집자 주>

치과위생사가 되고 나서 해외봉사를 세 번 갔었는데 그중 한 번이 우즈베키스탄이었어요. 왠지 낯설기도 했고, 또 어떤 나라일까 너무도 궁금해서 흔쾌히 즐거운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습니다. 약 7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수도인 타슈켄트에 도착했어요.
 
이슬람 국가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긴장도 했지만 뭔가 설레는 마음이 더 가득했어요. 첫날부터 새벽 5시에 일어나 타슈켄트에서 안디잔으로 택시를 이용해서 가야 했어요. 비행기로 가는 방법이 있지만 일주일에 1~2번 밖에 운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 약 6시간 동안 차를 타고 이동했어요. 택시 기사님이 에어컨을 잘 안 틀어 주셔서 진짜 정말 더웠어요. 편안한 아스팔트가 아닌 산을 오르고 내려가고 길을 따라 끝없기 달리다 보니 땀도 많이 흘리며 드디어 도착할 수 있었어요.
 
안디잔은 페르가나 분지의 동쪽에 있는 교통. 상업의 요충지로 목화 재배 지대의 중심지이며 일찍부터 기계화 영농이 발달했다고 해요. 도착해서 밥을 먹는데 우즈베키스탄은 식사 전 손을 씻을 수 있는 물을 줘요. 깨끗이 손을 씻고 야외에서 식사를 시작했는데 남자와 여자가 같이 식사를 하면 안 된다고 해서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식사를 했어요. “응?”하며 약간 의아해했는데 그 나라의 문화라 생각하고 받아들였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논’이라는 발효한 밀가루로 만든 얼굴만 한 빵을 줍니다. 식사 때마다 이 빵들이 나와요. 우리나라의 쌀밥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기름밥이라고 하는 “오쉬”를 먹었는데 보기에는 기름을 잔뜩 넣은 밥에 고기, 채소, 병아리 콩 등을 넣어 밥을 지어서 먹는데 처음 먹을 땐 너무 느끼하고 몇 숟갈 못 먹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샤슬릭은 꼬치요리인데 큼직하게 썬 고기에 소금, 후추, 각종 향신료를 넣어 간을 한 후 숯에서 훈연해서 먹어요. 양고기와 소고기를 먹었는데 너무 짜서 첫 식사는 논만 줄기차게 먹었어요.
 
매 식사마다 기름밥은 너무 기름지고, 샤슬릭은 너무 짜서 잘 못 먹었어요. 제가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가장 입맛에 안 맞았던 나라가 우즈베키스탄이기도 해요. 그래서 그런지 우즈베키스탄을 관광하면서 3박 4일 동안 설사병이 나서 정말 고생했었어요. 음식을 잘못 먹었는지 장염에 걸려 음식을 먹어도 배가 아프고 안 먹어도 아프고 화장실을 하루에도 정말 많이 다녀서 힘들었어요.
 
또 제가 갔을 때에 5천 숨(21.05 기준 한화 약 535원)이 가장 큰 화폐단위가 보니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돈다발을 꺼내야 했기 때문에 그게 가장 불편했어요.(현재는 5만숨까지 나왔다고 해요.) 안디잔에서 3일간 의료봉사를 했는데 나이 드신 분들은 금으로 앞니를 씌워 놨는데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의 치아들을 금으로 씌워 놨어요. 물어보니 앞니가 금으로 되어 있으면 예뻐 보이고, 부의 상징이라고 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안 그러지만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웃으실 때마다 금니가 환~하게 보였어요. 봉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치아도 봤는데 중앙아시아 사람들이라 그런지 치아가 좀 더 크고 단단해 보였어요. 치과의사와 동행한 게 아니라서 저는 양치하는 방법도 알려주고, 불소도 해주고 자일리톨도 나눠 주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안디잔에서 봉사를 끝내고 사마르칸트에 갔는데 기차를 타고 갔어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KTX같 같은 기차인데 빠르고 쾌적했어요. “레기스탄 광장과 메드레세”라는 곳에 갔었는데 레기스탄 광장은 오늘날 가장 뛰어난 동양 건축물의 집결체로 꼽힐 정도로 색이 너무 예쁘고 다양하고 고급스러웠어요.
 
타슈켄트에 있는 “미노르 모스크”라는 예배당도 갔었는데 건축물이 너무 이국적으로 무늬 하나하나가 어떻게 이렇게 다양하고 화려한 색채를 사용해서 정갈하고 예쁘게 만들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예뻤어요. 겉은 하~얗고 돔은 파~란색으로 만들었는데 기도실에는 남자만 들어갈 수 있고, 여자는 밖에서만 보고 기도할 수 있어요. 기도실 안으로는 여자는 못 들어가요. 무슬림들은 하루 다섯 번 기도를 올리는데 시간도 딱딱 맞춰서 기도를 한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초르수 바자르” 타슈켄트의 대표적인 바자르로 실크로드 시대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했다고 해요. 여기서 견과류를 몇 개 샀는데 고소하고 맛있었어요. 화려한 무늬가 있는 냄비 받침도 샀었는데 무늬가 다양하고 예뻤어요.
 
우즈베키스탄은 사실 좋은 기억보단 장염으로 고생한 기억이 많아서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아요. 좋은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봉사와 여행 내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와서도 후유증이 컸어요. 여러 나라를 여행했지만 아파서 고생한 첫 나라 더 그런 것 같아요.
 
이슬람 국가였기 때문에 여자에 대해서 제한도 많고, 규제도 있었지만 말은 안 통해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행복했던 여행으로 기억돼요. 봉사를 하면서도 저를 통역해주는 현지 친구도 생겨서 아직까지 SNS로도 연락하고 지내며 새로운 친구가 생겨 더 기쁘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즐거웠던 여행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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