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설날 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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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설날 즈음
  • 유 성 원 목사
  • 승인 2011.02.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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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용히 앉았다가

그냥 있어본다, 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본다'는 말은 무언가를 주시한다는 말이면서 동시에 주시하고 있는 제 터잡은 자리와 자리하고 있는 상태를 상기시킨다. 사위 풍경과 스스로가 맞닿은 방식을 조금은 명료히 할 수 있는 조그만 (인식의) 이치겠다. 새해랍시고 들뜬 기분은 그러나 연이틀 방구석에 숨죽여 있었으니 앉고 누운 자리가 몸의 무게감을 선명하게 드러낼 법도 했다.

2. 국화차를 마시면서

손찬호목사님이 건네준 국화차를 한봉 뜯어 우려 마신다. 티백이면서도 제법 맛깔스럽다. 우려 마실 차가 있고 다려 마실 차가 외따로 있겠으나 고창의 국화가 해풍을 맞아서인지 다려 마시는 깊이도 느껴져서 좋다. 어떤 이는 국화차를 마시면 들녘에 서있는 기분을 맞는다고 했는데, 적잖이 맞는 말이기도 하다. 동의보감이나 본초강목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머리를 맑히우는 기운이 거기에 있으니까 지당하다.

3. 어쩌면 시어와 공부가 솟는 배경은

그러다 문득 어떤 생명과 조우하냐에 따라 머리에 이는 사고가, 손가락에서 뱉어지는 말이 많이도 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때 그 자리에서 자연으로 발아하던 생명의 순간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하게 와인에 장소와 년도 표시를 하는 것은 아닐게다. 이 경우는 몸공부를 말한 박현씨의 두 갈래 몸공부의 길에서 `몸을 다스리는 공부'에 속하는 것임에 분명한데, 무엇을 `조우'하는가에 따라 몸은 고통의 덩어리가 될 수도 있고 은혜의 덩어리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쯤해서 써둔 것을 둘러보니 중학교 수준의 사고에서 맴돌고 있는 느낌이 짙다. 물론이야 이해인 수녀의 글이 소녀풍일진대 그런 맴돎으로도 맑고 투명하게 깊어질 수 있다면 더없이 그윽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내일은 산사나 어느 교회당의 종소리를 들으러 가야겠다.

“…빨간 동백꽃잎 사이사이 / 숨어 있는 바람을 / 가만히 흔들어 깨우다가 / 멈추어 서서 듣던 종소리…맑음의 여운이 하도 길어 / 영원에까지 닿을 듯한 수녀원의 종소리도 보내니 / 영원한 마음으로 받아 주십시오.”
 (겨울엽서 /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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