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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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독백
  • 유성원 목사
  • 승인 2009.09.2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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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1. a certain destiny/eternity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인생도 슬프지만 순간을 지나칠 수 밖에 없는 운명도 서글프다.

운명은 제걸음 멈춰선 순간이 영원이라 약속하지만 그리 약속하는 바는 스스로의 두 손가락 고리 거는 일에 다름아닐 터. 확연한 바, 순간은 순간을 따라 기필코 흐른다는 사실이며 그것이야말로 영원의 운명이자 운명인 영원.

2. 가을

처서에 이르러 지나면 햇빛과 쪽빛과 낯빛이 달라진다고 하던가. 바야흐로 가을이다. 삼시 세끼는 꼭 챙기지 않더라도 꼬박 눈여기고 몸으로 익혀 마음에 새기면서 영혼을 살찌울 시계에 왔다. 털어내고 비울 때이자 나 없이 나일 수 있는 역설의 계절이 도래했다. 더없이 진중할 신앙의 시간이다.

3. 거름, 걸음, 걷이

일정한 시간의 추임새랄까 때가 갖춘 마디랄까 혹은 나누이고 겹쳐지는 하나와 여럿의 안팎이 처음에서 나종으로 지녀, 엉켜 풀어헤치다 마주 섬일까. 과정 없는 결과 없음을 필연으로 확연히 하는 시간의 매듭과 유연하듯 굳는 땀방울 그림자를 따라 봄 여름 가을에 닿고.

4. 잊고도 살아지고

어쩌면 망각의 시간이다. 잊고도 그저 살아간다. 주어진 시간이면 족하다. '주어진'이라는 경계적 언어도 시간의 틈바구니 사이로 빠져나가는 망각의 언어다.

더러 시간의 존재(da sein/`거기'라는 공간성은 시간성으로 하여 발생 가능하다)라고 하지만 존재의 시간zeit von sein이 필경 어울린다.

보물상자처럼 여기는 책장 윗켠엔 애기 주먹 크기의 지구본과 최순우 옛집 엽서와 인근 바닷가에서 주워 올려놓은 돌맹이 그리고 first circle과 󰡒그대가 홀로 있을 때 황홀하게도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대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라는 글이 쓰인 엽서, 세라믹 십자가와 최종태의 예수상이. 곳곳에 살아온 흔적이 이처럼 가득하고 의미도 풍부하지만 기억할 사람과 기억되는 사람과 기억하는 사람과 기억 속의 모든 풍경들이 잊혀진다. 이(와 같은)처럼 두서 없는 서술은 감성의 끄적임이 아니다. 종내에 튕겨 흩어질 인생 모두가 그처럼 허화로 살다 헌화로 끝나는 순간이 아닌가 불쑥 든 사념.

5. 결국, 구원의 문제: trace and tradition in music

멘델스존이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발견했다. 치열하게 전통을 고전을 제 음악을 고뇌한 흔적이 아닐 수 없다. 제 종교성의 원류를 찾는 일과 열정에 분명하다. 제 종교성의 표현을 위한 방법찾기에 분명하다.  그가 부유했다는 것이 그러한 사실을 가리워서는 안되겠다.

가난한 사람의 콤플렉스가 초월지를 추동했다는 말에서도 그렇다. 오늘의 사람들이 마태수난곡을 연주하고 듣고 종교에 흠뻑 젖는 일 자체로 큰 의미가 있겠으나, 멘델스존의 이러한 고뇌와 수고가 없다면 의미에 덧붙여 음악의 길이 지향하는, 곡에 흘러 율동하는 구원의 추임새를 듣보기란 요원한 일이다.

쇼팽은 결핵으로 늘 죽음을 살았다. 엄밀성과 구원의 방법론이 그 곡에 빼곡한 이유다.

멘델스존의 길과 쇼팽의 길, 그들의 삶은 다르다. 그러나 음악을 터 삼은 그들에게서 접점을 본다. 음악이 아닌 다른 삶에서도 그러한 길을 본다. 결국, 구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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