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떠올라 이내 사라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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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떠올라 이내 사라지는
  • 유성원 목사
  • 승인 2009.06.2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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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 달 샘

다시금 오년 전의 메모를 꺼내 들춰봅니다.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기 힘든 시기일수록 지난 시간 뱉어놓은 말들이 좋은 도움을 줍니다. 지금 하고 있는 말과 행하고 있는 일들이 바른가, 바르지 않은가를 구분도 지어줍니다. 빛이 긴 하지(夏至)일수록 밤 깊은 고요와 침묵을 배우는 데 익숙해야 할 것입니다. 여름 준비 잘 마무리 하시구요.
 

1) 불 꺼진 방에서 큰 대 자로 누워 종일 닫혀있는 창문을 응시합니다. 가로등 불빛이 사각 창틈 사이로 번지는 것을 응시하며 눈 반쯤 감고서 일렁이는 빛의 물결을 만들어봅니다. 마음의 형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다가, 아차, 교회 주위에 가로등이 없다는 사실을 깨칩니다. 불빛의 정체를 창문 열고 확인합니다. 달빛. 이내 사라지는 달빛을 따라 모난 마음 구석으로 여명 밝아옵니다. 지난 밤은 참 짧았습니다.

2)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면 컵 가득 차를 담아 길건너 논두렁을 바라봅니다. 이윽고 지는 해가 개구리 울음을 재촉하면 여기저기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옵니다. 컵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두 팔을 어깨 위로 올려듭니다. 지휘. 녀석들 소리가 잦아들 즈음 비워진 컵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공간 가득하던 소리도 비워졌습니다. 검푸른 하늘에 별들이 반짝입니다.

3) 아침이면 무심코 들었던 새소리를 이제는 유심하게 듣습니다. 사택 한 귀퉁이에 둥지를 틀고 자식새끼 돌보는 한쌍의 새를 보면서부터입니다. 이름은 모릅니다. 매일 녀석들의 비행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제는 그 모양새와 크기와 소리가 제각각으로 보이고 들립니다. 지들끼리 지저귀며 대화하는 이유마저 알 것 같습니다. 깊은 저녁이면 지붕의 그 녀석들이 뒤척이는 소리도 들립니다. 녀석들은 나의 뒤척이는 소리가 들릴까요?

4) 에릭 호퍼의 말을 다시 기억합니다 : 희망은 호흡이 짧지만 용기는 호흡이 길다. 그리고 거기에 첨언하고 싶습니다 : 용기와 인내는 한 켤레다. 인내 없는 용기란 객기에 불과합니다. `순간' 힘을 쏟아내는 용기의 겉모습은 인내라는 내면의 모습을 취하면서 참된 용기로 다듬어집니다. 진정한 용기란 필경 침묵에 가깝습니다. 자연이 좋은 이유는 말 없이 말 건네기 때문입니다. 고요와 침묵 속에서 용기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상황이 닥칠 때마다 손을 불끈 쥐었다가 살며시 풀게 됩니다. 응어리는, 풀어지면서 영롱한 것으로 탈바꿈하면서 공고해질 것입니다.

5) 당신은 언제 살아있다는 것을 느낍니까? 저는 그렇습니다. 문득 떠올라 이내 사라지는 그 순간에 살아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순간이 살아있다는 것의 진실임을 느낍니다. 사실과 진실의 양면에서 절절한 생의 현실성을 얻을 수 있다면 감사할 일이고, 감사란 문득 떠올라 이내 사라지는 사실과 진실의 배면에 놓여 옹알이 하는 아가와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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