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주름에 포개진 기적
상태바
시간의 주름에 포개진 기적
  • 유성원 전도사(정읍 / 중광교회)
  • 승인 2007.08.20 15: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 아버지께서 쓰러지셨습니다. 전날인 7일 제 결혼식을 전후해 두 번째 위출혈이었습니다.

5일 쓰러지신 때에는 어머니께서 내심 5일장을 염두 하기도 하셨다는데, 이제 막 신혼여행을 앞두고 가방을 챙기던 터라 무척 당황하기도 했고 한편 아찔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서둘러 모병원에 간호사로 근무하는 고향친구의 아내에게 연락을 취한 뒤 급한 마음 다잡고 강릉으로 향했습니다.

그날 오후, 아버지는 한없이 착하고 여린 목소리로 󰡒성원아, 결혼 축하한다󰡓고 등을 토닥이듯 전화로 말 건네시며 표현 못 할 위로와 평안을 주셨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아버지의 모습이 어른거리며 별 생각이 다 들었고 누구라도 그랬겠지만 위기감과 무력감이 엄습했지요. 결혼예배를 위해서 또 얼마나 참고 견디셨을까? 혈육지정의 눈물이 가슴 언저리를 휘젓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운전하는 동안 여행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병원의 상황을 주고받았습니다. 출혈이 극심해 우선 혈관에 관을 주입해 수혈 중인 모양이었습니다.

실은, 처음 쓰러지신 시점의 병원에서는 쓰러지신 이유도 몰랐고 당연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친구의 아내가 속히 병원을 옮겼기에 응급치료가 가능해진 것이지요. 찾아가 살펴달라는 한 통의 전화가 실낱의 희망이 되어 나락의 시간을 구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녁 11시가 넘은 시간에 응급실을 찾으니 초상집이 따로 없었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 밤을 지새는 동안 위내시경 시술과 혈관조영술 등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다음 상황을 대비한 외과의사들이 불러졌습니다. 중간중간 내과의들은 `준비'를 권고하기도 했지요.

삶이 준비해야 할 최대의 과제란 과연 이토록 허무한 것일까, 그리 아니 생각할 수 없었지요. 그러나 다행히도 아버지께서 잘 견뎌주셨습니다. 생체리듬이 기적처럼 정상을 찾아 그날 아침 중환자실로 모셨고, 이제는 운전까지 하실 정도로 건강과 여유를 회복하셨습니다. 여전히 의사들은 더딤 없던 회복의 순간과 과정을 놀라워합니다.

한달 가까운 기간을 신혼여행으로 잡았었는데 에누리 없이 꼭 그 기간만큼 아내와 강릉에서 병간호를 하며 지냈습니다. 가끔 어머니께서 아버지와 바닷가를 산책하시며 전화를 하십니다.

󰡒여기 이렇게 가까이에 아름다운 길과 풍경이 있는지 몰랐구나!󰡓 문득 기적을 바라는 인생이 기적임에 분명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시간의 주름에 포개진 기적을 누릴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우리네 모든 삶 가운데 위로에 위로를, 평안에 평안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