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보존 중심 패러다임 전환 필요해”
상태바
“예방·보존 중심 패러다임 전환 필요해”
  • 배샛별 기자
  • 승인 2016.04.19 13: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치의학적 민간문화 관심 촉구

최상묵(79)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명예교수는 “임플란트나 수복 치료를 잘한다고 치과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 모든 국민의 구강이 얼마나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것이 치과 선진국의 척도”라며 치과인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18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치과병원에서 만난 그는 정년퇴임 후 정기적인 진료 봉사와 후학들을 위한 강의에 나서는 등 여전히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를 통해 현재 치과계가 처해있는 문제점을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봤다.

 

- 전 서울대학교치과병원장, 대통령 치과주치의, 대한치주연구소 이사장 등 치과인으로서 화려한 타이틀을 지녔다. 소감과 근황이 궁금하다.

 

돌이켜보면 모두 부질없다. 교수직을 내려놓고 보니 세상은 넓고 대학은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치과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 형이하학적 기준에 얽매여 방법론과 기술을 가르치는 데에만 급급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치과대학에서 ‘보다 선량하고 훌륭한 치과의사 만들기’란 제목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타이틀은 ‘올챙이 치의학도들에게 들려주는 할배교수(명예교수)의 치의학적 동화’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동화가 진부할지라도, 인격과 품성을 성숙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성숙한 치과의사를 양성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에게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 직접 대학에 강의 제안을 했다. 7년 전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 서울특별시장애인치과병원을 찾아 자문 겸 진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치과계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 오피니언의 역할을 위해 치과전문지 ‘덴틴’을 창간했다.

 

- 치과계의 현실, 어떻게 진단하는가.

 

현대사회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구강건강에 대한 관심도 상당히 높아졌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이 불편함을 최소화하고 심미적 측면을 보강하기 위해 치과를 찾는다. 즉 치의학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는 건강보다는 미용(아름다움, 편안함)의 추구에 더 가깝다. 치과 진료의 필요성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전문가 생각과 소비자의 생각이 일치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치과 치료의 예방적 수단을 선택하는 동기를 만드는 데 일반 의학보다 매우 불리한 입장에 있다. 예를 들어, 학업에 열중하는 청소년 시기에 치과 방문이 급격히 줄어든다. 치과의료 공백 사태가 장기화되는 것이다. 이를 전체 치과로 환산을 한다면 그 수치는 엄청날 거다.

 

- 개원가 운영이 힘들다는 얘길 많이 듣는다. 여기에 대한 견해는?

 

경기침체가 개원가의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치과의료 소비 행태는 경제 수준, 소비문화 등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진국 치과의 경우 주치의제에 대한 국민적 인식 수준이 높고, 경기 변화에도 끄떡없이 호황을 누린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치과 내원율이 낮고 한번 치료에 목돈이 든다. 결국 사람들은 치과 문턱이 높다고 인식한다. 지금 우리 치과임상 기술은 상당한 수준에 있다고 인정되지만, 수복 치료에만 편중이 돼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임플란트나 수복 치료를 잘한다고 치과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 모든 국민의 입 속이 얼마나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것이 치과 선진국의 척도가 될 것이다.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 같은 맥락에서 치과계가 궁극적으로 나아갈 방향은?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 치료 체계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당뇨나 고혈압 같은 만성 질환은 아무리 경기가 나빠져도 병원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치과질환도 만성질환이다. 임플란트, 수복 치료에 전념할 게 아니라 예방관리·보존치료 패러다임으로 나가야 한다. 사람들이 구강 건강이나 진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에 대해 분석하는 치의학적 민간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양한 사회집단이 치과를 보는 시각과 견해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즉, 사회학적 분석이 필요하다. 이는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 간 연대를 통해 극복하고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 치과위생사 발전을 위한 거시적 로드맵이 있다면.

치과진료를 흔히 네 개의 손으로 하는 치과업무(Four Hand Dentistry)라고 말한다. 치과진료가 치과의사 단독으로 할 수 없고, 업무 특성상 치과위생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치과의사들만으로 전 국민 구강위생을 감당하기에 한계가 있다. 특히, 예방관리·보존 패러다임을 정착시키는 데에는 치과위생사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효과가 입증된 예방 위주의 공중 구강보건사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치과위생사 인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치과의사를 치과위생사로 대체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치과위생사 업무와 역할의 다양성, 특수성을 인정해주는 법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의료법이 개정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 치과위생사협회의 역할도 중요할 것 같은데.

 

‘치과위생사 의료인화’는 왜 이제 시작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싶을 만큼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그간은 지성이 부족했다. 의료법 문제를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지성이 바뀌었다. 확실한 목표가 생겼기 때문에 진실한 지성과 합리성, 체계적인 로드맵을 갖고 접근해 나가야 한다. 국회·대정부 활동 및 유관단체와의 협조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진실한 지성으로 접근하면 정부나 국회, 시민단체, 치과의사 조직에서도 받아들일 거라 본다. 치과의사협회에서도 도와줘야 한다. 치과계가 코웍(Co-work)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좋은 정책을 밀어줘야 한다.

 

- 한국의 치위생계, 나아가 치과계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 현실적인 조언도 부탁한다.

 

1990년대 4년제 치위생학과 개설이 추진되면서 많은 치과의사들이 ‘인건비가 상승한다’, ‘콧대가 높아진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내놨다. 반대로 나는, 그만큼 자긍심이 생기면 결과적으로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다소 낭만적이고 철학적인 표현일 수 있지만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가 조화를 이뤄 치과 업무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치과의사는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전문가로서 치과위생사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치과위생사 역시 협조와 이해를 통해 치과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서로의 진심 어린 소통과 코웍(Co-work)이 필요하다.

 

- 치과계 대선배의 입장에서 젊은 치과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의학은 과학적 지식과 기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의학은 서로 다른 분야의 여러 개별적인 지식을 통합하는 ‘커다란 그릇’의 역할을 함으로써 우리의 건강을 폭 넓게 수용할 수 있는 학문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차원 높은 인간에 대한 연구가 없으면 의사는 한낱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의술은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의료인이 되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역시 좋은 의사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기까지 50년이 넘게 걸렸다. 좋은 의료인이 되려면 강한 책임감과 선량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고답적인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 진리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