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구체화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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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구체화한다는 것
  • 유성원 목사
  • 승인 2008.09.1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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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1. 비가 오면 여러 상념들이 솟아나지요. 참 신기한 일입니다. 대지가 꿈틀대듯 빗소리에 감정의 리듬이 함께 하니까 말이지요. 그 때에도 비가 많이 내렸어요. 중학교 1학년 시절, 소위 `멋모르고' 겨드랑이 사이에 책을 끼고 다니며 자신이 책의 작가나 책의 주인공이 된 듯 착각을 하던 뭐 그런 시절이었지요. 대강 세 사람의 작가가 중학교 시절의 중요한 한 순간을 점유한 것 같네요. 헤르만 헤세, 서머셋 모옴, 칼릴 지브란. 빗소리에 따라 시선이 책장에 꽂힌 책 한 권에 머물다 보니 그 시절이 문득 떠오릅니다.

지와 사랑! 달과 6펜스! 예언자!

나르찌스와 골드문트, 이상과 현실, 현실에 발 딛고 선 시인.

아직 그 날의 감수성이 살아있는 건지 형이상과 형이하의 경계에서 오고가는 무수한 삶의 모습들이 생생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지요. 도저한 인생의 비밀들을 움켜쥐고서 삶을 고뇌하거나 온전히 살아가고 있는 건지요. 일상에서 자신의 현존을 만나고 있는지요.

나이가 먹어가면서 삶의 `멋'을 안다고 여겼는데, 오늘은 무슨 이유인가요. '멋모르던' 시절 이미 멋을 살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멋을 안다고 여길수록 멋은 조금씩 사라지는 것은.

나르찌스 : '인간은 자연으로 받은 천부의 재능을 갖고 자신을 구체화하려할 때는 그가 할 수 있는 지고의 것과 심오한 것을 행하는 탓이지… 자기 자신이 되어 자신을 구체화하는데 애쓰라고 말일세'

골드문트 : '이해할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네. 그런데 자신을 구체화한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자신을 구체화한다…. 자.신.을.구.체.화.한.다.는 것.

2. 살다가 보면 멈춰, `서야' 할 지점이 보입니다. 돌아보기 위해서도 그렇고 분명하고 확고한 정체성을 감아쥐어야 할 때이기 때문이어서 그렇기도 합니다. 몇 살이어도 좋습니다. 시점과 지역이 교차하는 그 곳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교차점에서 우왕좌왕 않고 결단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늘 그 순간이 찾아옵니다. 손님 대하듯 말고 내 안위함을 유지시키려 하듯 지속적으로 노력할 일입니다. 비약이지만, 그래야만 내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작 우리가 쏟아야 할 일들에서 멀어지는 까닭은 예수 없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없는 곳에서는 `나의'라는 꾸밈어가 늘 `나를' 괴롭힐 것입니다. 나를 꾸미는 것과 나를 괴롭히는 일은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늘 같이 있습니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예수님은 없이 계십니다. 없이 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길은 오직 한 길, 나를 없이 하는 것입니다. 멈춰서야 보이는 분, 바로 우리가 그토록 만나고자 한 나 자신입니다. 그때그때마다 오시는 그이는 그렇게 물으실 겁니다. '왜 달리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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