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작은 일이지만 그렇게 즐거울 수 없어
상태바
지극히 작은 일이지만 그렇게 즐거울 수 없어
  • 김미숙 (우즈베키스탄 열방치과 치과위생사)
  • 승인 2003.10.18 1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가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계기

치과위생사 일을 한지도 벌써 3년차일 때다. 매일같이 다람쥐 체 바퀴 드는 듯한 이 삶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10년 후에도 별로 변함이 없어 보일 이 치과위생사 일을 비전도 없어 보이고, 의미가 있어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한살이라도 젊을 때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찾는 것이 현명하지’라는 생각으로 이일 저 일을 찾기 시작했다.

형편상 치과일은 그만 두지 못한 채 다른 일을 찾기 시작했지만, 마치 두 마리 토끼를 쫒으면 한 마리도 제대로 못 잡듯이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날 suction을 잡으면서 푸념하듯 기도했다.

“하나님, 전 이렇게 못 살아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치과에서 보내는데 제게 있어 치과위생사 일은 별 의미도 없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것 밖에 없는데… 다른 일을 주시던지 아니면 이 일을 통하여 의미 있는 일을 하게 해 주시던지 절 좀 도와주세요.”

삶의 의미가 없었기에 절망적인 기도이자 절실한 기도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 때 지난 치의협보를 보는 순간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흔히 있는 그런 광고였을 텐데, 그때는 그 광고가 내 눈과 심장에 와 박히는 것 같았다. 치과의료선교회에서 일주일 단기 의료봉사팀을 모집하는 광고였다.

이미 모집 날짜가 이틀이나 지난 상태였지만, 어떻게 할까 망설일 것도 없이  용기를 내어 전화를 했다. 이렇게 하여 처음으로 내 전공을 살린 봉사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말도 통하지 않은 태국으로 갔으니 얼마나 많은 일을 했을까 마는 그때부터 내 맘속에는 뭔가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어쩌면 말이 통하지 않았기에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봉사활동을 다녀온 후 기독치과위생사회(이하 CDF)를 알게 되었고 난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뜻 있는 치과위생사들이 모인 CDF는 소수의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주말마다 교대로 고덕동에 위치한 지체 장애자들이 모여 사는 ‘우성원’에 가서 봉사를 하였다. 주로 hand scaling이나 초음파 스켈링을 해주는 일이었지만, 그나마 우리의 손길마저 없었다면 이들의 구강 상태는 더 엉망이었을 것이고, 음식물 저작이 원활치 못해 전체적인 건강도 안 좋아졌을 것이 분명하다.

치석이 잔뜩 쌓여 염증이 심각한 그들에게 처치를 해주고 나면 내 마음까지 말끔해 지는 것 같아 정말 보람있었다.

토요일 오후 지친 몸을 끌고 그곳까지 갈 때는 힘들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은 늘 기쁘고 가벼웠다. 지극히 작은 일이지만, 이 일을 통해 내 삶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고, 치과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내가 하고 있는 치과위생사 일이 특별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소중한 계기가 된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