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사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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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사에 다녀와서
  • 치위협보
  • 승인 2002.10.2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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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에 신문을 읽다가 조그마한 쪽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일출과 월출이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다는 곳인데 약간은 생소한 곳이었다. 마침 기회가 닿아 며칠 후 그곳을 다녀올 기회를 잡았다.

부산하면 어렴풋이 기억되는 몇몇 친구들과 기억에 남는 장소들로 설레는 마음을 부여안고 짐을 챙겼다. 급한 마음에 저녁도 뒤로하고 출발부터 서둘렀다. 내려가는 휴게소에서 간단히 요기를 때우고 다시 핸들을 잡았다. 잠시후의 감격을 생각하며…

같이 간 일행들은 이런 내 마음을 알기나 한 듯 나에게, 아니 서로에게 계속 재잘거렸다. 밤길의 고속도로는 길 안내라도 하듯 훤히 뚫렸고 덩치 큰 트럭들은 ‘형님’하며 비켜주는 것 같았다.

한 밤중에 도착한 해운대는 그곳이 마치 내 고향이라도 된 듯 잔잔한 물살로 인사를 해주었다. 결혼 후에 처음인 해운대에 짐을 풀고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구석구석 변모한 모습을 살피러 우리 일행은 분주히 오고갔다.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이유로 다니는지(?) 꽤 많은 인파로 밤 시간을 의심케 했다.

다시 그곳에서 차를 몰아 10여분 정도 지나가니 내 목적지인 용궁사가 달빛 조명을 받으며 나를 반겼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분명히 한 개였던 달이 거기엔 두 개의 달이 되어 서로 나에게 폼을 내고 있었다.

조용한 산사도 맘에 들었지만 깎아지듯 한 절벽 위에 간신히 걸터앉은 대웅사의 모습이 거짓도 탐욕도 다 버리게 되는 無念無想의 순간이었다. 헛되지 않게 내게 무엇인가를 준 것에 종교와는 상관없이 그분께 감사 드렸다.

어느덧 어슴푸레 밝아오는 붉은 기운이 긴 생각을 잠긴 나를 깨우고 말았다.

한 쪽은 일출을 한 쪽은 월출을 볼 수 있다는 말에 설마 했는데, 과연 그 말이 사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가슴 벅차게 일어서는 장엄한 일출, 나를 살아있는 한 인간으로 확인 시켜주는 그 순간,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몇 시간이 마치 몇 분이 된 듯한 그 곳을 뒤로하고 아쉬운 이별을 했다.

그제야 졸음이 찾아왔다. 다시 해운대로 내려와 온천에서 잠시 눈을 부친 후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 집으로 키를 잡았다. 빠듯한 아니, 약간은 무리가 따르는 여행이었지만 나를 확인시켜주는 고마운 일정이었다. 잠시 현실을 떠나 어디로 시간여행을 다녀온 듯…

다시 욕심을 버리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생각의 정리를 하며 밤길에 보지 못한 가을의 경부고속도로를 맘껏 즐기며 다시 현실의 문 속으로 들어왔다.

꼭 말해주고 싶다. 지친 친구들에게 달빛으로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 보면서 바로 뒤에 오는 장엄한 일출로 엄청난 에너지를 받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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