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평화, 그리고 사랑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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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평화, 그리고 사랑을 안고…
  • 이금아 치과위생사
  • 승인 2002.05.1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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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쌍둥이구요, 제 쌍둥이 동생은 간호사로 병원에 근무하고 있어요. 하나밖에 없는 우리 오빠는 제가 근무하고 있는 치과 원장님이고, 막내 동생은 저의 동문 후배로 치과위생사입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열심히 일하는 치과 가족이지요.’

이금아 치과위생사가 처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이하 ‘건치’) 베트남 평화 진료단에 참여하게 된 것은 단순히 해외에서 봉사진료를 한다기에 호기심(?)이 생겼고 생활에 변화를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에 3년을 넘게 근무한 병원을 과감히 정리하고 짐을 꾸리게 된 것이라고 한다.

예상은 했지만 베트남에 도착한 후 그 나라의 고온 다습한 기후, 특히 음식에 적응하기가 힘들었고, 진료지에 도착해서는 물밀 듯이 밀려오는 환자들을 치료하는데까지 많은 인내력과 체력이 요구되었다고 한다.

베트남 일정 중에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한국의 열정적인 학생도 만날 수 있었고, 서로 힘든 강행군의 일정이지만 나보다는 서로를 배려하는 진료단,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만남들….

이러한 것들은 그녀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고 내년에 꼭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다고 한다.

또, 주입식 교육에 익숙했던 그녀에게, 진료 후 보고서를 작성하여 평가하고, 다시 좀 더 나은 진료를 위해 토론을 위해 비판하며 문제점을 제기하고 해결해 나가는 노력들이 어디에서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산 교육이었고 잊지 못할 훌륭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생생한 경험을 얘기해 달라는 요청에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녀는 조용히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7박 8일 동안 잠도 자지 못한채 10시간 가량 이동하면서 치과 장비 세팅 등등…

이동하는 데만도 많은 체력이 소모되고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진료봉사단은 3개조로 나뉘어서 4일 동안 진료를 하고, 2일 동안은 베트남 양민 학살지역과 박물관 등을 답사하며 이곳의 실상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우리는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쉬지 않고 진료를 했는데, 점심도 돌아가면서 간단히 하고 오직 밀려드는 환자의 치료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가 진료소를 운영하는 지역에는, 그곳 인민위원회로부터 미리 정보를 얻고 2시간 전부터 몰려든 수많은 인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의 손길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그들을 보며 우리 일행은 더욱 힘을 얻어 간단한 묵념 후 진료에 임했다.

그들의 구강 상태는 특별한 염증성 치주질환은 많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치아가 단단한 환상 치석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사탕수수를 많이 먹기 때문인지 상악 전치부 우식증이 많았다.

또, 영구치 발치를 일찍 해버린 경우도 쉽게 볼 수 있었고 구강위생상태는 매우 열악한 실정이었다.

진료단의 프로그램은 치료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잇솔질 교육 등을 통해 그들이 스스로 구강위생상태를 관리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 베트남 치과의사와의 연대 등 다각적인 구상하에 마련되었다.

진료 중에 마취를 할 때에도 그들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참을성이 많다는 것을 느꼈는데 특히 고통을 꾹 참아내며 울지 않으려는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찡해 옴을 느꼈다.

워낙 많은 환자들이 몰려와서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1-2시간정도 기다려야 했었는데, 한정된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환자를 진료하려다 보니, 진료소는 어느 과를 막론하고 마치 야전을 방불케 하는 혼잡을 이루었다.

소독실에서는 내리쬐는 햇볕아래 뜨거운 압력솥으로 기구 소독을 하느라 분주했고 힘든 진료일정에 한마음으로 서로 이끌어 나가는 봉사단원들…. 그러나 가능한 한 많은 환자에게 혜택을 주려다 보니 세심하고 완벽한 진료를 할 수 없었고 진통 치료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었던 점이 못내 안타까웠다.

적은 인력으로 휴식없이 계속되는 진료에 모두 가운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였지만 모두들 혼신의 힘을 다해 진료하면서 서로를 걱정하고 챙겨주는 따뜻한 인간애가 있ᄋᅠᆺ기애 가능한 시간이었다.

그 곳에서 환자를 치료하는데는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이 중요했는데 베트남 호치민대학 한국어과 학생들이 통역을 맡아주었다. 그들은 우리 진료단 못지 않은 열정으로 우리 진료단과 함께 숙식을 하면서 일정에 동행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우리들을 감동시켰다.

치과의사의 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치과위생사가 많이 부족하여 애를 먹었는데, 여건상 쉽지는 않겠지만 다음에는 좀 더 많은 치과위생사가 참여했으면 하는 마음이 절실했다.

무엇보다도 특히, 건치 집행부의 노고와 열정, 그리고 희생은 우리를 하나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3번째 묵고 있는 호텔에서는 베트남 음식에 적응하기 쉽지 않은 우리들을 위해 우리의 입맛에 맞춰 음식을 만들어 주었으며, 따뜻한 인사와 애정 어린 격려도 힘이 되었다.

그들의 경제적 수준은 우리의 1960년대 수준이며 그만큼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살아 있었다. 우리 일행은 베트남 진료를 통해 또 한 번 감사와 평화, 사랑을 안고 돌아왔다.

무거운 짐을 싸고 적지 않은 경비를 감수하면서 이처럼 힘든 일정을 이겨내며 매년 그 땅에 땀 흘리는 이유를 다 같이 공감하기에 진료단 참가자들은 하나가 되었고, 부끄러운 역사 앞에 사죄와 함께 화해와 평화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리고 과감히 병원 문을 닫고 뜨거운 열정으로 사랑의 인술을 바친 모든 참가자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이금아 치과위생사는 요즘 한국에서의 병원생활에 열심이다. 그리고 베트남에 다시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출근하기 전 아침 일찍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면서 자기계발에 열심인 그녀는, 그 곳에서 치과위생사라는 직업이 아직은 사회에 깊이 인식되지 않았구나 라는 것도 매번 실감한단다.

그녀는 치과위생사가 병원이라는 작은 사회에 안주하지 말고 취미생활이나 운동 그리고 봉사활동 등을 통해 같이 융화되면서 사회적으로 활동영역을 넓혀 좀 더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치과위생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아참! 제가 꼭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진료실에서 꼭 치과위생사 명찰을 패용해서 우리 스스로 긍지와 자부심을 가졌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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