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無)에서 유(有)를 이끌어 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경험해보지 못한 나는 미시간 대학교 대학원에 수학하는 동안에 치과위생사의 교육이 우리나라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얼마나 느꼈는지 모른다.
그 때는(1962년) 동양에 치과위생사라는 단어도 없었고 양성된 치과조수가 시술하고 있을 때다.
미국에서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 양성과정을 샅샅이 살피고 귀국한 나는 먼저 미국을 다녀오신 서울대 치대 교수님을 찾아가 치과위생사 교육과정을 신설할 것을 건의했다.
그 답변은 “뭐 치과위생사? 시기상조야”라며 상대를 하지 않으셨다. 보사부 치과담당에게 가서 이야기했더니 “왜 무면허 치과의사를 양성하려고 하느냐”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래, 시일이 필요하다'하여 일 년을 이사람 저사람 필요한 분들을 만나서 설득하였고 WHO, 극동담당자가 한국에 왔을 때 만나 우리나라 정무에 치과위생사 양성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도록 간청을 한 성과가 있어, 1956년에 세브란스 병원 내에 의료보조원 양성과정이 설치되었고 그 당시 병원장이던 임의선씨가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고 시행토록 하라고 위탁하였다.
이것이 우리나라 의료보조원 양성기관의 시작이었다. 치과위생사 양성도 여기에 초석을 두고 있다.
이제 치과위생사라는 제도는 여성 직업으로 견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그 여성계에서 차지한 위치도 직업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 치위생학 교육 50주년이 되니 몇 자 써 달라고 하여 졸필을 들었다.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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