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을 깨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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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을 깨는 지혜
  • 황윤숙 논설위원(한양여자대학교 치위생과 교수)
  • 승인 2017.04.1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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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숙 논설위원

어린 시절 전기가 흔하지 않아 시간단위로 공급되던 그 때 냉장고나 텔레비전은 부잣집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러다 보니 얼음 또한 귀한 물건이어서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을 가게에서 구입하여 사용하였다.

여름날 수박화채를 먹을 때면 어머님은 언니에게 얼음 심부름을 시키셨는데 얼음은 단단하고 무거워 얼음 심부름은 큰 사람의 몫이었다. 동네에는 빙(氷)이란 글씨가 크게 쓰인 정 사각형의 현수막이 펄럭이는 가게가 있었고, 주인은 주문의 금액에 맞춰 커다란 톱으로 잘라 짚으로 꼬아 만든 끈으로 묶어 주었다. 주인에게 얼음을 건네받은 언니는 혹여 얼음이 녹을까 잰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얼음이 도착하면 어머님은 큰 함지박에 깨끗이 씻은 얼음을 담고 망치나 무거운 도구를 꺼내 오시는 것이 아니라 이불을 꿰매는 커다란 바늘을 준비하셨다. 그리고 단단한 얼음에 대바늘을 꽂고 무쇠 칼의 손잡이로 툭툭 두드리시면 신기하게도 단단해서 깨질 것 같지 않던 얼음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여러 번의 반복된 동작에 의해 먹기 좋을 크기로 부서졌다.

사람들의 단단하고 깨질 것 같지 않은 일의 앞에서면 겁을 낸다. 그리고는 ‘안 돼’, 혹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야’ 또는 ‘저런 일은 힘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야’라고 해보지도 않고 주저앉고 만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큰 장애의 벽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특히 관습이나 제도 앞에서 더욱 그러하다. 세상에 변화가 어떤 일은 불가능하고 또 어떤 일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도나 관습처럼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삶의 과정 속에 굳어진 일들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고,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의지를 가지는가에 따라 더 빨리도 변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얼마 전 모 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한 후보를 지지하는 SNS를 기반으로 하는 자발적 조직인 ‘손가락 혁명군’이 탄생하였다. 현대 네트워크 시대에 SNS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홍보하는 집단지성 유기체들이라는 긍정적 의미와 활동상의 몇 가지 문제점들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필자가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본 것은 그들 활동의 잘잘못보다는 자발성이다. 그리고 그 활동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들은 치과계의 더 나아가 우리를 둘러싼 기존의 제도와 관습, 인식 중에 변해야 하고 고쳐져야 하는 것들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흥분한다. 하지만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해결점을 외부에서 찾고 있다. 누군가 유명하거나 힘이 있을 법한 사람들의 도움이나, 협회와 같은 집단의 리더들이 해결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협회는 회원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기에 변화를 원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치과위생사 한 사람 한 사람이 생각을 모으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치과위생사라는 직업을 알아주길 바란다면 우선 자신의 주변인들에게 치과위생사를 정확하게 알리는 노력을 해야 하며, 누군가가 치과위생사에 대한 잘못된 이야기를 한다면 수정을 요구하여 바로 잡는 것도 우리 스스로가 해야 하는 일이다. 또한 전문성을 인정받고 싶다면 구강전문가가 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 엄마 치과위생사들이 자녀가 취학하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방문하여 구강보건교육을 하는 활동은 잘하고, 필요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전문성을 알리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변화를 원한다면 변화를 시켜줄 누군가를 찾기 이전에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누구나 자신들이 잘 하는 일, 좋아하는 것은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그 장점들을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심을 위한 것이 아닌 주변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행복한 일을 위해 자발적으로 활동으로 활용한다면 그 어떤 단단 얼음도 깰 수 있는 강한 바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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