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사설/칼럼
준법과 정(情)
  • 황윤숙 논설위원(한양여자대학교 치위생과 교수)
  • 승인 2017.05.15 13:15
  • 댓글 0
황윤숙 논설위원

2005년 3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똑똑”하고 연구실의 문을 누군가 두드렸고, 평상시처럼 “네”하였지만 인기척이 없다.

문으로 다가가 여는 순간 교수회관 복도에 아이들이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밝혀 들고 서있었다. 평상시 많이 보던 풍경이 뭐 그리 감동이냐 하겠지만 상황은 좀 달랐다.

35살에 개교 2년째인 신설 지방대학의 치위생과에 전임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리고 9년 7개월 동안 젊음의 열정을 불태웠다. 2005년 3월 그동안 치위생과 개설이 금지되었던 서울에 치위생과가 개설되었고, 교수가 아닌 치과위생사로 치위생계에서 해야 할 일들을 가득 안고 정든 제자들을 떠나 서울로 근무지를 옮겨 오게 되었다. 마침 동계 방학 중이라 아이들에게 인사도 못한 채 짐을 정리하고 떠나왔다. 그리고 3월 새 학교에 출근한지 8일이 되는 날, 미처 이별조차 하지 못했던 학생들이 문 앞에 서있는 게 아닌가. 떠난 선생의 생일날, 새롭게 만난 아이들이 생일을 챙기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어 서울까지 먼 거리를 케이크를 사서, 흙 묻힌 구두 대신 아스팔트에 어울리는 예쁜 구두를 사라고 선물까지 준비해온 것이었다. 때론 학생들이 큰마음으로 선생에게 가르침을 주고 그렇게 배우면서 살아온 세월이었다.

2017년 스승의 날을 앞둔 시간, 학교에서 교수 전체에게 스승의 날 행사가 법에 저촉되지 않게 각별히 조심하라는 당부의 공지를 한다. 또 제자가 건네는 작은 화분, 꽃이 배달된 뒤 그리고 어김없이 문자 한통. “교수님. 저는 교수님과 이해관계가 없구요. 그건 2만 원 짜리예요. 교수님.” 아마도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을 의식하고 후 처치까지 하는가 보다.

법에는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포함한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과 상관없이 1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100만 원 이하 금품 수수는 직무 관련성이 있는 경우에만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직무 관련 없이 100만 원 이하를 받더라도, 같은 사람으로부터 연간 300만 원을 초과해 받으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이건 법에 저촉되나? 괜스레 좋은 마음으로 보냈다가 불편하게 하나? 식사 대접을 해야 하는데 이것도 법을 살펴보아야 하나?

실제로 내가 가진 버릇 하나가 어딜 여행하다가 맛난 것이나 제철 과일을 보면 지인들에게 보내는 것이다. 그날도 맛난 것이 있어 제자에게 보냈다. 보내는 내 마음은 제자에게 보낸 것이었는데 제자와 내가 사회적 관계에서는 이해관계로 엮어 있어 맘만 주고 되돌려 받는 경험을 하고 나니, 이런 저런 생각 때문에 귀찮아 마음도 못 전하고 살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부패가 도에 넘게 지나쳐 이런 법이 생긴 것은 참 가슴 아픈 일이다. 근본 취지에 대해서는 두 팔 벌려 환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무도 없는 토요일 특근 날 라면봉지(그때는 일회용 비닐봉지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에 삶은 달걀을 가져와 수줍게 건네고 돌아가던 제자의 정이 그립다. 법 앞에 사제지간에 정으로 고마움으로 행하여졌던 사은회, 스승의 날 등 행사들이 부정청탁이라는 잣대로 평가 받아 추억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것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

스승의 날, 누군가의 선생이기보다 누군가의 제자로 스승님들을 생각해본다. 인생의 좌표가 되어주신 그 고마움과 좌표를 향해 삐뚤지 않게 곧은 걸음으로 가라고 쉼 없이 일깨워준 말씀과 게으름에 대한 꾸짖음을 주셨던 그 귀한 시간들. 그리고 실천으로 보여주셨던 행동들.

법은 준엄하고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법의 잣대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표현해야 하는 정(情)이 있는 세상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승님께 마음을 전하는 정이 담긴 손편지를 써보아야겠다.

황윤숙 논설위원(한양여자대학교 치위생과 교수)   

<저작권자 © 치위협보(덴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