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태움’ 문화...치과위생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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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태움’ 문화...치과위생사는?
  • 배샛별 기자
  • 승인 2018.03.0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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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뭘 안다고” 신입 치과위생사 중 일부, 막말하는 선임에 퇴사 고민까지
치위생계 자성·변화 목소리 나오기도

최근 간호사 사회에 만연한 ‘태움’ 문화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치과에 근무하는 치과위생사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의 ‘태움’은 병원 내에서 선임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들에 행하는 ‘직장 내 괴롭힘’을 뜻하는 간호계의 은어다.

최근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이러한 태움을 당한 신입 간호사가 투신자살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가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다수 매체에 따르면 입사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신입 간호사 박모(27)씨는 설 연휴 아파트 고층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그 측근들이 간호사 간 태움 문화가 박씨를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은 크게 이슈화됐다.

사건 소식을 접한 간호사들은 “신입 때 울면서 출퇴근하던 기억이 나 남일 같지 않다”,  “혹독한 태움에 불안장애까지 와서 한동안 약을 먹었다”, “나도 출근하면서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하는 등 깊이 공감하면서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사실 간호사들 간 태움 문화는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모를 만큼 오래된 관행이다. 이번 사건 이후 대한간호협회가 보건복지부와 함께 분석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의 결과를 보면 설문에 응답한 간호사 40% 가까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 가해자 대부분은 같은 간호사였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간호사 태움 근절을 위한 청원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는 태움의 근본적인 원인을 ‘인력 부족’으로 정의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법정인력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병원은 고발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치과 내 텃세에 신입은 기죽어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비단 간호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치과위생사들도 마찬가지다. 치과위생사들 사이에서는 간호사들 간 ‘태움’ 문화와 일맥상통하는 ‘텃세’ 문화가 만연해 신입 치과위생사들이 치과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치과위생사들이 주로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비단 사회초년생 치과위생사뿐 아니라 치과에 갓 입사한 치과위생사들이 기존 직원들의 텃세를 경험한 사실을 털어놓는 경험담이 꾸준히 올라온다.

경험담 대부분은 먼저 치과에 입사했다는 점만으로 텃세를 부리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괴롭힘은 비교적 소규모 개원가에서도 업무상 시비로 시작해 무시와 폭언, 인신공격 등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이미 치과에서 다른 직원과의 문제로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는 사연은 치과위생사 커뮤니티의 단골 소재가 된지 오래다.

심지어 최근에는 치과 내 치과위생사 간 태움을 고발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게시자는 “한국 안에서 공산당이 있다면 이곳이라고 할 정도로 팀원들끼리 치과위생사의 헤드 선생님을 독재자라고 부르고 있었다”며 “저보다 오래 일한 선생님들은 헤드 선생님이 정년이 될 때까진 건들면 안된다고 했다”고 사연을 전했다.

그러나 사연 속 헤드 선생님은 일과 관련 없는 부분에서 혼을 내는 것은 물론 “야”, “너”, “ㅇㅇ년” 등과 같은 반말과 폭언까지 일삼는 것으로 전해졌다.

게시자는 이러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우울증 진단을 받아 6개월 이상 약을 먹게 되면서 임신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고 했다.

인간성 존중되는 조직 문화 필요

누군가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약간의 스트레스는 갖고 있듯이 치과에서 일하려면 치과위생사 간 태움은 어쩔 수 없다고 냉정하게 얘기할지도 모른다. 먼저 입사한 선배 입장에서 작은 실수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입을 혼내는 일도 있을 순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정도가 인간성과 도덕성을 헤쳐선 안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도 임상에서 근무하는 치과위생사 동료 간 무시와 괄시가 아니라 존중의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대한치과위생사협회가 수원여자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함께 연구한 ‘임상치과위생사의 근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77.4%가 재직 중인 기관의 치과위생사 간 동료로서의 존중 또는 수평적 관계에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수의 신입 치과위생사들이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직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치과 내 잘못된 문화를 개선할 필요는 분명 있어 보인다.

2016년 한국치위생학회지에 게재된 ‘신규치과위생사의 이직의도와 영향요인’에서도 신규치과위생사는 임상현장에서 업무 미숙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점에서 인적 특성을 고려한 동료 치과위생사들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특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프리셉터(preceptor, 사수) 프로그램의 시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신입 치과위생사들이 치과 환경과 업무에 적응하기 위해선 선배, 동료 직원들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최근 한 치과위생사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서는, 치과 내 만연한 태움 문화를 지적하고 치위생계 내부의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치과위생사로 추측되는 글쓴이는 “악습 태움 대물림이라는 관습 때문에 대형병원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쩜 우리의 조그만 공간에서도 보일 듯 보이는 일들”이라며 “한 사람의 인격에 무차별적인 공격이 이뤄지고 있지 않나 나부터 반성해본다”고 운을 뗐다.

글쓴이는 치과위생사 동기가 처음 6개월간 같은 치과에 근무하다 다른 직원들의 핀잔과 무시에 못 이겨 퇴사한 뒤 아예 다른 직업으로 전직한 사실을 털어놨다.

그는 “당찬 나와는 달리 당차지 못한 내 동기였다. 항상 주눅이 들어 6개월이 6년보다 길었다고 했다”며 “가해자는 모른다. 신입들에게 (그들이) 한 일들이 과연 업무의 일부였다고 할 수 있을지”라고 반문했다.

이어 “우리들의 그림자였을 태움이 조그만 우리의 공간보다 내 마음에 존재하는지 가해자는 모른다”라고 덧붙였다.

글쓴이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해당 글은 다른 여러 치과위생사들의 공감을 얻으며 반응을 끌어냈다. 결국 치위생계 내부에서 이미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임에는 틀림없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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