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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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동행
  • 성미경 교수 (마산대학교 치위생과)
  • 승인 2020.07.24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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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경 교수
동행은 일정한 곳으로 길을 같이 가거나 오거나 한다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동행이라는 의미는 다양한 곳에서 적재적소에 필요한 다양한 의미의 내용으로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와 자녀, 스승과 제자, 형사와 죄수, 선택과 포기 등 원인과 결과처럼 함께하는 수많은 동행이 있고 내적인 동행, 외적인 동행, 어쩔 수 없는 동행 등 그 해석의 주체와 필요에 따라서도 다양한 동행이 있다. COVID-19로 인하여 개학을 걱정했던 2월이 가고 어느새 7월도 가고 있다. 연말에 결과를 내야 하는 다양한 직종의 수험생들은 지금 열심히 물과 영양을 주어 튼실한 작물을 재배해야 하는 시기이다. 주변의 다양한 외적인 요인이 산재하더라도 흔들림 없이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 작금의 현실에 어쩔 수 없이 함께하는 동행, COVID-19 
찰스 로버트 다윈은 ‘살아남은 것은 힘이 세거나 영리한 동물이 아니라 변화에 잘 적응한 동물’이라고 했다. 지금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현재 전 세계는 COVID-19로 인하여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생명을 담보로 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변화된 삶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그 와중에 대한민국은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부문에서 선진국임을 증명해 보이며 위기를 대처하는 모범국가로 여러 나라의 삶에 동행자가 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정부와 기관, 관련 직종들의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역감염자가 계속되고 있어 우려와 염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질병관리본부장은 ‘국민이 백신이다’라고 가슴 뭉클한 선포를 했다. 이 말은 ’방심하면 확진‘이다. 라고 해석될 수 있으며 국민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건강하고 목적적으로 끌어가기 위해서는 방역을 위한 행동수칙을 지키며 개인의 노력이 국가의 노력이 되어 함께 목적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비장한 동행을 요구하는 말임을 느낀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하기를 필수로 하고 밀접접촉을 피하는 일상생활을 지켜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마스크의 기능을 유지하되 패션이 될 수 있는 개성을 살린 마스크가 필요에 의해 등장하고 활용되고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듯이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면 마스크와 함께하는 삶을 모색해야 한다.
 
-내 인생을 풍성하게 해줄 동행, 친구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느꼈던 것 중 하나는 문화, 경제, 놀이, 일하는 습관 등에서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흥이 많고 다이나믹(Dynamic)한 삶을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즐기려면 혼자일 수 없고 함께하는 삶이 있을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요즘 세대들은 기성세대와 좀 다른 이기심과 개인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국민성은 비슷하다. 1998년 IMF 위기를 넘길 때도, 2002년 월드컵 4강을 이끌 때도, 2017년 국민의 주권을 찾는 촛불집회 때에도 우리는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아슬아슬한 위기와 두려움을 극복해 오곤 했다. 2020년 봄에도 우리는 예상치 못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생활이 우울하고 답답한 부분이 많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친구만큼 좋은 벗이 있으랴. 나에게도 웃음 폭탄 친구들이 있어 행복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동행의 의미는 가족이라는 절대적인 명제가 있지만, 유년과 청⸳장년 시절을 넘기고 나면 부모는 자녀를 독립시켜야 하고 자녀는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50대가 되면 다시 친구를 찾고 희로애락을 함께 할 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나에게는 40년 지기 친구들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넷에서 여덟이 되어 같은 취미생활을 즐기며 노년에 공동체 생활을 꿈꾸며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무엇이든 넷으로 나누는 습관을 갖고 만나면 늘 웃음 보약을 먹으며 인생을 풍성하게 해 주는 친구와 동행하고 있다.
 
-치과위생사로서의 동행, ‘우리’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배운 도둑질은 남 못 준다고 했다. 우리의 시작이 무엇이었든 간에 지금은 ‘치과위생사’라는 직종으로 운명공동체 안에 있다. 직무 분야에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고, 그 해결이 좀 더디더라도 우리는 개선하고 타협하면서 공동체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 그것도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늘 ‘우리’가 있는 바른 선택이었으면 한다. 선택은 또 다른 포기를 뜻한다고 했다. 포기 없이 선택된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선택만 기억해왔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선택이란 어떤 것이든 무서운 것이다. 늘 하나를 선택해야 하니 사람은 거기서 저마다 자신만의 발견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발견이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 때로 이기적일 수도 있다.
 
영원한 동행은 서로가 만나지 않는 평행선을 이루고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 직종에서 영원한 동행자는 누구이어야 할까? 아마 누구나 치과의사라고 하지 않을까? 치과의사가 있기에 치과위생사가 존재하고, 치과위생사가 있어야 치과의사가 함께 업무로 나아가듯 우리는 동행자여야 한다. 의료법과 의료기사법으로 법적 업무가 명시되어 있어도 우리의 업무는 연속적인 선상에서 이루어지므로 모호해지는 부분이 있다. 오랜 동행의 조건에는 각 직역 간 서로 소통하고 협의하여 합리적 해법을 찾아 법적으로 인정되는 확실한 업무의 재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 개인은 물론 협회의 적극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개인의 노력이 모여 협회의 힘이 될 수 있도록 각자의 일터에서 오늘도 노력하자. ‘치과위생사’가 있어야 지금의 삶에 내가 존재하듯 우리는 공동체적 운명을 갖고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갈 때 너와 내가 함께 발전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동행에 누군가가 꼭 너여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동행을 준비하는 당신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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