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여행의 이유

여행의 이유/ 김영하 저/ 문학동네 출판/ 2019년 4월 17일 발행 / 정가 13,500원 

2023-10-24     장효숙 치과위생사(이병준치과의원)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는 영화를 보고 난 뒤 김영하라는 작가의 글들이 다시 눈에 읽히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여행의 이유」라는 신간 도서가 나왔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서점으로 달려갔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책의 한 켠에 기록된 이 문장이 모든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있는 느낌이다. ‘여행’ 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어김없이 약간의 설렘을 느낀다. 이곳 저곳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준비하는 과정부터 들떠 오히려 출발의 순간보다 더 흥미로움을 주는 것은 여행을 계획하는 시간이지 않을까 싶다.
 
여행의 이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다양한 답이 나올 듯하다. 단순 관광에도 여행지의 자연경관을 즐기거나 처음 만나는 상가마다 나열되어 있는 다양하고 때로는 생소한 물건들과 그와 관련된 기억, 상황들을 떠올리거나, 새로운 장소에서의 쇼핑, 운동, 먹거리 등이 목적이 되기도 한다. 또 다른 경우는 그동안의 생활에서 지침을 만회하기 위한 휴양을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여행을 준비하는 각자들은 자신들 만의 다양한 이유를 만족할 계획과 얻고자 하는 작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짐을 챙긴다.
 
이 책에서 작가는 계획된 여행보다는 무작정 떠나 낯선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했을 때 맛이 있으면 좋은 것이고, 실패하면 자신의 글로 쓰면 되니 잃을 게 없다고 한다.
 
우리의 여행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순조로운 여행은 우리의 삶에 충분한 영양분을 제공해 줄 것이고, 떠나는 순간부터 이상하게 꼬여 살짝 고달팠던 여행은 우리의 술자리에 종종 등장해 안줏거리로 주변의 이들에게 회자 될 것이니 이 또한 나쁘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필자도 나름대로 계획은 세워 해외여행을 준비하고 홈쇼핑에서 파는 여행 가방까지 구입하고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코로나19라는 유행병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곤 세계가 들썩일 정도로 심각하게 퍼져 최악의 질병으로 등극하며 3년이 넘는 기간 우리의 발목을 잡았고, 생경하게만 느껴지던 마스크, 손 세정제, 살균제 등을 우리 집의 필수품으로 자리를 잡게 했다.
 
이제 그 기세가 조금씩 잡히며 마스크를 벗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돌아왔다. 이 책에서 보면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 즉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했다는 얘기가 있다. 끝없이 이동해 왔고 그 본능이 우리 몸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코로나가 잠잠해지자 그동안 움직이지 못한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먼 해외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매체들이 ‘보복 관광’이라는 과격한 표현을 쓰는 것조차 이해될 정도니 참 웃지 못할 일이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라고 했다. 여행이 우리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새로움을 주고, 또 삶의 복잡함을 회피하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뜨거움을 피해 가는 여행도 좋지만 선선해지고 높아진 하늘이 보이는 이 가을, 아무런 계획 없이 단 하루, 아니 몇 시간만이라도 멀리 혹은 근처 멋진 카페라도 나만의 여행 또는 나들이라고 나가보면 어떨까 한다. 여행, 짧은 나들이를 들려줄 내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