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외국인 근로자’가 아니라 ‘이주노동자’

2024-03-28     하종강 교수(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하종강
우선 ‘외국인 근로자’라는 표현에 대해서부터 생각해 보자. 굳이 ‘내국인’과 ‘외국인’을 구별하는 표기여서 ‘이주노동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자는 것이 인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외국인을 그럼 ‘외국인’이라고 해야지 그게 무슨 문제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당연히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점차 차별을 줄여가는 것이 인류 사회가 발전하는 방향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진 외국에서 ‘동양인’으로 차별받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굳이 ‘외국인’이라고 구별하는 것보다는 ‘이주노동자’라는 표현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영화 같은 이야기
지난 2007년 3월, 신축공사 중인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의 30층짜리 주상복합건물에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30층 옥상에서 철골 구조물 해체 작업을 하고 있던 몽골인 노동자 네 사람은 연기 때문에 숨이 막혔고 ‘이대로 죽는구나’ 하는 공포감에 휩싸였지만 아래층에서 “살려 달라”는 비명이 들려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어 내려가, 연기로 사방이 보이지 않은 가운데 손으로 사방을 더듬어가며 23층부터 27층 사이에서 모두 11명을 차례차례 둘러업고 옥상으로 피신시켰다.
 
구조 과정에서 유독가스를 많이 마신 네 사람 역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고 의사는 입원을 권했다. 혈중 산소농도가 정상치의 80% 정도로 떨어져 있었고 호흡도 불안정해 입원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병원이 병실을 배정했지만 잠시 뒤 이들은 모두 수액바늘을 뽑아서 계단에 버린 채 사라졌다.
 
한 언론사의 기자가 수소문 끝에 경기도 수원에서 이들 중 한 사람을 만나 병원을 빠져나간 이유를 묻자 “응급실에 경찰들이 있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들이 ‘불법체류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잠깐 ‘불법체류자’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해 보자. 인간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보다는 ‘미등록 외국인’이라는 말이 한결 더 인권이 반영된 표현이다. 4년 동안 부인과 딸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는 한 이주노동자는 “한국은 제2의 고향이다. 고향 사람들을 구한 것뿐인데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겠느냐”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을 둘러싼 ‘영화 같은 이야기’는 이것뿐이 아니다. 단속 과정에서 숨지거나 다친 이주노동자들만도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출입국사무소에서 조사를 받다가 뛰어내려 사망하고, 공장에 들어온 한국 사람을 단속반원으로 착각해 심장마비로 숨지고, 단속반을 피해 산으로 도주한 이주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러한 일이 계속 벌어지는데도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한국 사회구성원으로서 ‘직무유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주노동자 관련 정책의 변화
우리나라 최초의 이주노동자 관련 정책은 1991년부터 시행된 해외투자법인연수제도이다. 해외에 투자한 기업들이 현지 노동자들을 한국 내 사업장에서 단기간 기술 연수를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제도는 기업의 필요에 의해 현재까지도 시행되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인력난을 겪으면서 1994년부터 산업기술연수제도를 시행하게 된다. 사용자 단체들이 현지에서 노동력을 모집해 한국 내 사업장에 연수생을 보내는 제도이다. 이 제도들은 모두 그 이름에도 드러나듯 신분이 ‘연수생’이기 때문에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을 수가 없다.
 
이후 1998년에 산업기술연수제도를 취업연수제도로 전환했다. 2년 연수하고 1년 취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인데, 산업기술연수제도와 똑같은 문제점을 계속 갖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주노동자 문제가 점차 심각해지자 2000년 12월 대통령령으로 외국인근로자 인권보호대책을 마련할 것을 결정하고 외국인노동자 고용법안 추진을 위한 실무기획단을 구성한다.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됐으나 논의 과정에서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들은 배제되고 사용자를 중심으로 한 고용허가 제도가 추진됐다. 2003년 7월 31일 고용허가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2004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주노동자 관련 정책의 문제점
해외투자법인연수제도는 해외에 진출한 기업이 현지에서 노동력을 직접 고용해 한국에 연수 형식으로 보내는 제도인데, 한마디로 “노예제도의 결정판”이라는 것이 이주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연수생에게 현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조항 등이 있기 때문이다. 기숙사는 외출을 막기 위해 거의 감옥과 같은 구조로 되어있는 경우도 많았고, 이탈을 봉쇄하기 위해 한국에 오는 노동자들에게 다수의 보증인을 두게 하고, 그 노동자가 이탈했을 경우에는 보증인의 재산을 압수하는 일도 있었다. 산업연수제를 폐지하면서 해외투자법인연수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용허가제 역시 심각한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고용허가제의 원칙들은 노동시장 보완성의 원칙, 송출 과정 투명성의 원칙, 외국인 정주화 방지의 원칙, 내외국인 균등대우의 원칙, 산업구조조정 저해 방지의 원칙 등 다섯 가지이다. 매우 나아진 제도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고용허가제란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주노동자의 ‘노동’을 허가한 것이 아니라 고용주의 ‘고용’을 허가한 제도로서 시행 관련 조항 곳곳에서 고용자를 위한 제도라는 것이 드러난다.
 
사업장 이동 제한 조항 등이 그것인데, 직업 선택의 자유를 이주노동자들에게만 제한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는 없다. 실제 이유는, 사업장 이동을 허가하면 이주노동자들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고 더 좋은 환경을 갖춘 기업을 찾아 이동하기 때문에 기업의 노동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렇게 제한하는 것이 기업의 단기적 이익을 증대시킬 뿐 국가 경제에 결코 유익하지 않다는 점이다. 기업의 단기적 이익 추구가 언제나 국가 경제에 유익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마땅히 부담해야 할 노동비용을 정당하게 부담해야만 국가 경제도 건강하게 성장하고 국민의 삶의 질도 개선된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차별적 노동조건을 적용하면 내국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역시 저하될 수밖에 없다.
 
작은 결론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의 차별을 철저히 금지했던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많은 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에 가서 이주노동자로 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독일의 이주노동자 정책 전문가들은 한국 정책 담당자들에게 “독일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무슨 뜻일까? 독일에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각종 선진적 정책들을 시행했지만, 그 노동자들이 돈을 번 뒤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전제로 정책을 수립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주노동자 상당수가 그 사회에 정착하면서 독일 사회의 구성원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 역시 이주노동자들을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일의 경우를 참고하여 “한국의 고용허가제 역시 일시적 노동력을 국내에 유치해 노동시장을 보완한다는 차원을 넘어, 이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해 살아갈 경우 발생할 문제와 지원까지도 고려해야 한다”(국제이주기구 매킨리 사무총장)라는 지적은 충분히 일리 있다. 이주노동자들을 대한민국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는 기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