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비정규직 고용 문제의 해결 방안 (1) - 사용기간

2024-12-03     하종강 교수(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하종강
비정규직 고용 기간 2년 제한의 의미
기간제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파견법(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비정규직 고용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원고에서 설명했듯 비정규직 고용계약은 어디까지나 비정상적 고용계약으로서 장기 지속되면 그 비정규직 당사자나 사회 전체에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2년 이상 근무했다면 어차피 그 기업에 상시적으로 필요한 직책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계속 고용하는 것이 노동 숙련 비용을 줄일 수 있어서 경영상 유리하다.
 
많은 사람이 “비정규직으로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라고 알고 있고, 언론에서도 그렇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지만, 현행법의 의미는 사실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 기간이 2년을 초과하면 계약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해고할 수 없는 것”뿐이다.
 
예를 들어, 1년 단위로 고용되는 비정규직의 경우 계약기간 1년이 끝났을 때 회사가 아무런 제약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지만(기업의 입장에서는 ‘계약 해지’이지만, 당하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해고’나 다름없다), 그 계약이 연장돼 2년을 초과하면, 그때부터는 계약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상태의 고용계약을 ‘무기계약직’이라고 칭한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라는 뜻이다. 비정규직으로 고용돼 있을 때의 노동조건이 그대로 유지된 채 계속 일할 수는 있다는 뜻이어서 노동계에서는 이를 ‘영구 비정규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기업에 상시적으로 필요한 직책이라면 비정규직보다 실질적으로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이 노동자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 경제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바람직한 고용 형태이다. 기업 입장으로는 가능한 한 노동비용을 줄이고 싶겠지만 기업이 정당한 비용을 감당해 줘야 노동자 개인의 삶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유익한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이 원고에서는 ‘무기계약직’보다 ‘정규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자 한다. 
 
정규직 전환 회피 방법 1 – 반복 해고
기업은 매우 손쉬운 방법으로 이 의무 조항을 회피할 수 있다. 2년이 될 때마다 노동자를 해고하고 새로운 노동자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직책에서 일하는 사람을 계속 비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다. 실제로 언론사에서 취재 차량을 운전하는 비정규직 기사들의 경우 언론사들이 2년마다 운전기사들을 서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비정규직 고용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도 했다.
 
기업이 이렇게 회피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방법 역시 간단하다. 파견법과 기간제법의 ‘사용기간 2년’ 조항을 노동자 개인이 아니라 그 직책(일자리)에 적용하는 것으로 개정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일하는 노동자가 바뀌더라도 2년이 지나는 날부터 그 직책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다. 파견법과 기간제법이 정부의 주도로 국회에서 입법 절차를 거칠 당시에도 노동계에는 그렇게 명시하도록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와 기업은 “기업이 그렇게까지 파렴치하게 악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많은 기업이 실제로 그렇게까지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간제법과 파견법의 ‘사용기간 2년’을 노동자 개인이 아니라 일자리에 적용하도록 개정하면 기업들은 그 일자리를 일시적으로 없앴다가 새로 만드는 방식으로 회피하겠지만(기업이 그렇게까지 할까 싶지만, 실제로 그렇게까지 한다.) 일자리를 없앴다가 새로 만드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계약기간이 끝날 때마다 해고하고 새로 채용하는 것보다 훨씬 번거로운 일이어서, 실질적으로 반복 해고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정규직 전환 회피 방법 2 – 쪼개기 계약
‘소울리스좌’라고 불리는 동영상이 천몇백만이나 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놀이기구 탑승 안내하는 일을 4년 동안 하며 수없이 되풀이했을 안내 말을 마치 기계가 자동으로 말하는 것처럼 능숙하게 한다고 해서 ‘영혼 없는’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명칭이다. 강한 중독성을 갖고 있어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라는 그 동영상에 대해 수많은 언론 매체가 수백 건의 기사를 쓰며 앞다퉈 보도했지만 4년 동안 일하면서도 여전히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리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상황에 대해 살펴보는 언론 기사는 없었다.
 
근무 기간이 1년이 될 때마다 1~2개월 정도의 공백 기간을 두어 근로계약 기간이 계속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이른바 ‘쪼개기 계약’을 한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형태의 고용계약이 장기 지속되면 노동자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 경제에 모두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뒤늦게 ‘소울리스좌’ 쪼개기 계약의 불합리함을 지적하는 언론 보도가 나왔으나 “회사는 법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노동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고용 형태를 취한 것이니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 경영자로서는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입장”이라고 옹호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법으로 규제해야 하는 것이다. 퇴직 뒤 일정 기간 공백을 두고 재입사를 반복하는, 이른바 ‘쪼개기 계약’을 법·제도로써 엄격하게 금지해야 하고, 만일 그러한 계약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공백 기간에도 고용이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법 조항을 해석해야 한다.
 
비정규직 관련 법 ‘사용기간’의 의미
박근혜 정부는 2014년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발표하면서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린다”라고 하면서 마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사실 그러한 개정은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사기’에 가깝다. “정규직 전환 시기를 2년에서 4년으로 늦춘다”라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기간제 근로자 1,186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근로계약 기간을 연장해 달라’는 요구가 무려 82.3%에 달했다”라면서 이러한 조치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것인 양 치장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렇게 요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업들이 2년이 지나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2년이 될 때마다 비정규직을 반복해서 해고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노예계약이나 마찬가지인 비정규직 고용계약 기간을 스스로 늘려달라고 요구할 노동자는 없다. 노동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려면 “2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과 4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좋은가?”를 먼저 물었어야 한다. 당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에 대해 노동계에서 주장했던 “장그래가 정규직 시켜 달랬지, 비정규직 연장해 달랬나?”라는 구호가 노동자들의 바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