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비정규직 고용 문제의 해결 방안(2) - 동일노동 동일임금

2024-12-31     하종강 교수(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하종강
심각한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
2010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겨우 목숨을 건진 그 노동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붕대로 온 얼굴을 칭칭 동여맨 채, 화상으로 퉁퉁 부은 입술로 힘겹게 말했다.
 
“왼쪽에는 정규직, 오른쪽에는 저, 똑같은 작업을 했습니다. 똑같은 작업에, 똑같은 작업지시서에, 똑같은 공구에, 똑같은 작업재료까지… 다 똑같습니다. 오로지 다른 건 정규직 앞에 ‘비’자 하나 붙은 것, 그거 하나 빼놓고는 다 똑같습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났을 때 “정규직이 쓰다가 버린 장갑 주워서 빨아 쓰기에도 지쳤다” 등의 대화를 직접 들어본 경험에 따르면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 비인간적 차별이 해결됐다고 가정해 보자. 회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모두 정규직화하거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별이 모두 철폐됐다고 하자. 그 다음에 남는 문제는 무엇일까? 현대자동차 한 회사 안에서만 차별이 해소됐을 뿐이다. 현대차와 같은 대기업 노동자들과 그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청업체 중소기업 노동자 간의 차별, 그 중소기업 등 다른 기업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차별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별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당연히 있다. 그것이 바로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제도이다. 그렇다면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제도를 실현한 사회가 실제로 있을까? 역시 당연히 있다.
 
북유럽 나라들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나라들에서는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원칙을 기업 단위가 아니라 국가 단위로 시행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다시 말해,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는 회사가 달라도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급 기능사 경력 5년의 선반공이라면 그 노동자는 직원이 몇만명이나 되는 큰 대기업에서 일하거나, 직원이 몇 명밖에 안 되는 작은 중소기업에서 일하거나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자격과 경력이 같은 간호사라면 그 간호사는 몇천명의 간호사가 일하는 대학병원에서 일하거나 동네의 작은 의원에서 일하거나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스웨덴의 노·사·정협의체에서 합의한 ‘연대임금 정책’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잘 들여다보면 한국에도 이미 그러한 국가 단위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직종이 있다. 바로 공무원·교사·군인이다. 정부종합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나 읍사무소의 공무원이 급수와 호봉이 같으면 같은 임금을 받는다. ‘강남 8학군’ 등으로 불리는 금싸라기 땅에 있는 번듯한 학교의 교사나 시골에 있는 폐교 직전의 작은 분교 교사가 자격과 호봉이 같으면 같은 임금을 받는다. 군인도 마찬가지다. 육군본부에서 일하는 군인이나 최전방 휴전선 철책을 지키는 군인이 계급과 경력이 같으면 같은 임금을 받는다. 오히려 벽지에서 근무하는 경우에는 별도의 수당을 받아 더 높은 임금을 받기도 한다. 스웨덴에서는 이러한 원칙을 모든 직종의 노동자에게 적용하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가 경제에 끼치는 영향
스웨덴의 이러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가 널리 알려진 계기가 있다. 70년대 세계 경제를 강타한 ‘오일 쇼크’ 이후 대부분 선진국들의 경제성장률이 몇 년 동안 0%대에 머물러 있는 동안 스웨덴만 혼자 4~5%의 지속적 성장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연구기관들과 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그 놀라운 경제 성장의 원인에 대해 연구했는데 진보·보수 학자들이 모두 같은 결론을 내렸다. 스웨덴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가 바로 경제 성장의 동력이었다는 것이다. 무슨 뜻일까?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가 국가 단위로 시행되면 그 임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기업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부가가치 창출 등 다른 경쟁력이 없이 저임금으로 겨우 이윤을 창출하는 전근대적 기업들은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이다. 기업들은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면서 고부가가치로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모든 임금이 최저임금보다 높아져 최저임금에 대한 논란도 사라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도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거나 최저임금을 지불하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한계 기업들은 계속 경영을 해도 국가 경제에 크게 유익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기업을 편드는 보수적 학자들은 “스웨덴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도 최근 들어 많이 훼손됐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그 ‘훼손된 원칙’도 우리나라가 볼 때에는 거의 ‘신의 경지’에 가깝다. 스웨덴이 경제 불황을 겪거나 경제 성장이 둔화될 때마다 보수 세력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지만, 그 불황을 극복한 ‘스웨덴 모델의 부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사회안전망의 중요성
스웨덴과 우리나라의 결정적 차이는 사회안전망이다. 스웨덴에서는 경쟁력이 없어 퇴출되는 기업에서 실직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거의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고, 우리나라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따라서 우리는 저임금을 없애고 사회안전망의 수준을 높이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필요가 있다. 이 두 가지 정책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 쪽을 포기해야 하는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두 가지의 정책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세부담율을 지금보다 많이 높여야 한다. 노동자들도 지금보다 세금을 좀 더 많이 내고 부유층은 훨씬 더 많이 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방향은 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