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노동조합의 정치 활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2025-02-28     하종강 교수(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하종강
프랑스에서 10살 아동을 대상으로 노동조합에 대해 가르치는 교육용 동영상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노동조합은 기업주와 교섭해서 합의를 이끌어냅니다. 예컨대 장애인 고용에 대한 합의일 수도 있겠죠. 일반적으로는 노동조합 대표가 직원들을 대표해서 노동조합의 입장을 대변합니다. 노동조합은 노동 관련 법을 놓고 정부와 협상하기도 합니다.”
 
정부와 협상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배운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는 노조가 정부를 상대로 활동하면 “왜 불순하게 정치에 개입하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적 요구나 행동을 하면 마치 순수함을 잃은 것처럼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정치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삶에 매우 구체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정치적이지 말아야 한다”라는 주장이 오히려 매우 강력한 정치적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우리나라의 한 선수가 경기용 헬멧에 작은 노란색 세월호 리본을 붙이고 출전하자 “죽은 아이들 이용해서 정치 선동하는 게 노란 리본 세력이다”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공영방송사 출신의 한 보수 언론인은 “세월호 리본의 의미가 오로지 4년 전 세월호 침몰에 대한 추모뿐인가? 아니면 박근혜 정부의 책임도 함께 묻기 위함인가? 박근혜 정부 책임을 묻기 위함이 전혀 없는 게 맞나?”라고 따져 묻기도 했다. 과연 어느 쪽이 더 정치적인가?
 
한국이 배출한 경제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는 그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세계화의 주된 추진력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주장하듯 기술이 아니라 정치, 즉 인간의 의지와 결정이다”라고 주장했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그의 책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에서 “중산층이 중심이 되는 사회는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행동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라고 주장했다.
 
기술이 발달하고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똑같이 기술이 발달하고 경제가 성장해도 행복한 사회가 있고, 불행한 사회도 있다. 그 중요한 차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정치적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1989년 교사노조(전교조)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2천여 명의 교사들이 파면·해임당했다. 그 무렵에는 교사노조가 ‘불법’으로 금지돼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 공무원노동조합을 설립하는 과정에서도 3천 명 넘는 공무원이 징계당했다. 그때까지는 공무원노조가 ‘불법’으로 금지돼 있었기 때문이다. “2천여 명의 교사들이 파면·해임당한 사건” 또는 “3천여 명의 공무원이 징계당한 사건”이라고 흔히 표현하지만, 사실은 한 가정이 완전히 무너져 버리는 사건이 5천 건이나 발생한 것이다. 친분이 있는 해직 교사와 징계당한 공무원들과 그 가족들이 고통을 겪는 모습을 그 뒤 20년 넘는 세월 동안 지켜봐야 했다.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가입했다는 이유로 수천 명의 교사와 공무원을 징계한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중요한 사실은 정부가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면서도 결국 교사노조와 공무원노조가 우리나라에 만들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2009년 한 방송사에서 ‘시티홀’이라는 20부작 드라마가 방송됐다. 배우 김선아 씨가 비정규직 공무원 신미래 역을 맡아 열연했다. 마지막 회에 이르러 신미래가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당하게 당선된다. 시장으로 처음 출근하는 날, 시장실보다 먼저 찾아간 곳이 놀랍게도 공무원노동조합 사무실이다. 노조 사무실에 불쑥 들어선 시장이 노조 간부들에게 묻는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데, 제 떡잎은 어때 보이십니까?” 노조 위원장이 답한다. “다른 시장님과 출발선이 다르니 저희는 사실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우호적일 거라는 기대는 말아주십시오.” 그 뒤 짧지 않은 대화가 이어진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무심코 지나쳤겠지만, 징계당한 3천여 명의 공무원과 그 가족들은 이 장면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아, 우리가 공무원노조를 만드느라고 3천여 명이나 징계를 당했는데, 이제는 드라마에도 나오는구나.’ 그런 감개무량함으로 지켜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판단해보자. 공무원들을 징계한 정부와 징계당한 노동자 중에서 누구의 주장이 옳았는가? 20여 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너무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인류 사회는 그렇게 수천 년 동안 일하는 사람들 곧 노동자의 주장이 조금씩 실현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역사의 진행이 엎치락뒤치락하거나 가끔 퇴행할 때도 있지만 인류 역사를 긴 호흡으로 지켜보면 그 방향이 유지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노예제도는 철폐되고, 머슴제도는 사라지고, 지금 많은 선진국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공무원노조를 처음 설립하던 2002년 UN 산하 국제노동기구(ILO) 가입국 수는 176개국이었다. 그중 공무원노조가 명시적으로 금지된 나라는 단 2개뿐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대한민국이었다. 노동조합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그만큼이나 후진국이었다. “민주노총은 너무 정치적이어서 싫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 노동운동이 그동안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교사노조와 공무원노조가 불법으로 금지된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미개한 나라로 남았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노동조합이 정치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오히려 정치적 활동을 너무 적게 하는 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