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AI 시대, 치과위생사의 전문성이란 무엇인가

2026-10-01     김영남 교수(경복대학교 치위생학과)
김영남
지난 학기 구강보건사업 기획 수업 중에 있었던 일이다. AI를 활용해 지역사회와 대상자 특성을 분석하여 사업계획서 초안을 작성하던 한 학생이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물었다. “교수님, AI가 이렇게 빠르고 그럴듯하게 기획서를 뽑아주는데, 앞으론 치과위생사의 역할도 점점 사라지게 되진 않을까요?”
 
이제 인공지능은 더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검색하고, 글을 쓰고, 자료를 정리하는 일상 곳곳에 이미 들어와 있다. 치과의료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영상 분석, 환자 정보 정리, 진료 의사결정 지원, 환자교육까지 그 활용 범위는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이런 변화 앞에서 우리가 흔히 던지는 질문은 “AI가 발전하면 치과위생사의 역할도 줄어드는 것은 아닐까”이다. 그러나 정말 물어야 할 질문은 조금 다르다. AI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시대에, 사람인 치과위생사의 전문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진리에 도달하는 지적 능력 가운데 테크네(technē)와 프로네시스(phronēsis)가 있다고 했다. 정해진 절차를 따라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기술적 숙련이 테크네라면, 구체적인 상황에서 무엇이 좋은지를 숙고하고 판단하는 실천적 지혜가 프로네시스다. AI는 테크네의 영역에서 이미 인간을 앞지르고 있다. 방대한 통계를 정리하고 유사 사업의 패턴을 찾아내는 일에서 인간은 기계를 따라잡기 어렵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에게 정말 필요한 사업이 무엇인지, 한정된 예산과 인력을 어디에 먼저 써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프로네시스의 영역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AI시대에 치과위생사에게 더욱 요구되는 능력이며, 다시 묻는 전문성의 실체다.
 
세계치과의사연맹(FDI)은 2024년 「Artificial Intelligence in Dentistry」 정책성명을 통해 치과 전문인이 AI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갖추고, AI가 제시하는 결과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지나치게 의존하는 자동화 편향을 경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AI를 전문가를 대신하는 주체가 아니라 전문가의 판단을 돕는 보조시스템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 앞에서 우리는 종종 두 가지 극단으로 치우치기 쉽다. AI가 사람을 대신할 것이라는 두려움, 혹은 AI가 알려준 것이니 맞을 것이라는 과신이다. 그러나 AI는 틀릴 수 있다. 특정 지역이나 계층의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으면 편향된 사업계획을 내놓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단순한 활용 능력이 아니라 AI를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전문직이란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정보의 의미를 판단하고 그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2021년 발표한 「보건의료 인공지능의 윤리와 거버넌스」 지침에서, 보건의료 AI가 인간의 자율성을 보호해야 하며 안전성과 투명성, 설명 가능성과 책임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가 특정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하도록 하는 책임은 결국 인간에게 남아 있다.
 
생성형 AI와 대화를 해본 사람이라면 놀라울 만큼 친절하고 공감적인 답변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감과 소통마저 AI가 대신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공감하는 말과 돌봄의 차이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돌봄은 친절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아니다. 주민들의 표정을 살피고, 사업 참여를 망설이는 이유를 알아차리고, 필요한 순간에 설명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낯선 사업을 경계하는 주민을 기다려주고, 반복해서 참여를 포기했던 이들에게 다시 시작할 힘을 건네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매뉴얼로 옮겨지지 않는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맥락에서 건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무게로 가닿기 때문이다. AI는 정답에 가까운 문장을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 문장이 지금 이 사람에게 필요한 말인지는 알지 못한다. 결국 공감이 만들어내는 신뢰 그 자체는 전문가의 영역인 것이다.
 
우리의 전문성을 단지 몇가지 술기를 능숙하게 수행하는 것으로만 정의한다면, 기술의 발전은 위협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역사회의 건강행동 변화를 지원하는 전문성으로 바라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표준화된 사업 문안을 만들어내는 것은 AI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민들이 왜 참여를 꺼리는지 직접 이야기를 듣고, 함께 방법을 찾고, 변화한 참여율을 확인하며 다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훨씬 복합적인 과정이다. AI가 효율을 담당한다면, 우리는 의미를 담당해야 한다.
 
그날 강의실에서 학생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AI가 우리 일을 얼마나 대신할 것인가가 아니라, AI가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우리의 전문성이 무엇인가”라고.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만이 해야 하는 역할이 더욱 선명해진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AI를 잘 사용하는 치과위생사를 넘어, AI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필요한 치과위생사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끝내 대신 써줄 수 없는 빈칸이 있다. 그 빈칸을 채워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함께 준비해야 할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