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디가 재판의 결과를 좌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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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디가 재판의 결과를 좌우하다
  • 이성환 법무법인 안세 대표변호사
  • 승인 2014.05.20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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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T'자형 삼거리에서 자동차와 자전거가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자동차는 삼거리를 `ㅡ' 방향으로 직진하고 있었는데, `ㅣ'방향의 길을 따라 삼거리를 향해 달려오던 자전거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그대로 삼거리에 진입한 결과 위 자동차에 의해 측면을 들이받힌 것입니다. 이 사고로 자전거 운전자 A는 자동차 바퀴에 깔려 사망하였습니다.

이에 자동차 운전자의 유무죄 여부를 묻기 위해 형사재판이 열렸습니다. 피고인(자동차의 운전자)은 형사법정에서, 자신이 운전하던 자동차가 교차로에 진입하여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 앞으로 A가 갑자기 `날아오는' 바람에 이 사고가 발생하였고, 때문에 자신은 이 사고를 회피할 수 없었고 회피행위에 대한 기대가능성도 없었으므로 자신에게 사고에 대한 죄책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형사재판부는 이러한 피고인의 주장을 인정하여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고, 항소심을 거쳐 무죄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피고인은 이 판결을 크게 환영한 반면, 피해자의 유족은 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한편 자동차의 운전자에게 손해배상을 구하는 민사소송이 피해자의 유족에 의해 제기되어 위의 형사재판과 별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에서도 피고(자동차의 운전자)는 피해자가 자신이 몰던 자동차 앞으로 갑자기 `날아오는' 바람에 이 사고가 발생하였음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무죄로 확정된 위 형사소송의 판결을 증거로 제출하였습니다. 원고인 피해자의 유족은 위와 같은 피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다투었지만, 그 보람도 없이 민사소송의 1심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형사재판의 결과 및 거기에서 채택되었던 증거를 거의 전적으로 받아들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것입니다.

원고는 위 각 형사재판 및 민사 1심 재판 모두를 절대로 수긍할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원고는 위 민사 1심 재판에 대해 다시 항소를 제기하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항소심 재판의 변론을 맡을 변호사를 선임하였습니다. 연거푸 불리한 방향으로 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해 뒤늦게 변론을 맡아 뒤집는 사례는 찾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므로, 변호사는 많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는 이 사건을 수임하였고 재판의 결과를 뒤집기 위해 이전의 형사판결 및 1심판결의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를 면밀히 되짚기 시작하였습니다.

변호사는 이러한 검토를 토대로 민사재판의 항소심 변론에 착수하였습니다.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피고(자동차 운전자)는 피해자가 피고가 운전 중인 차 앞으로 갑자기 `날아오는' 바람에 미처 피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특히 피해자가 `날아왔다'는 표현은 극히 잘못된 것이며 이로 인해 이 사고가 전방의 상황을 전혀 주시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갑작스럽게 툭 튀어나와 발생한 것과 같은 선입견이 부여되므로 이러한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민사재판의 항소심 재판부는 변호사의 위 주장의 당부를 판단하기 위해 실제로 피해자가 `날아'온 거리와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그것이 예측할 수 있는 정도인지 여부를 다시 한 번 살펴보기로 하였습니다. 버스 내 CCTV영상을 통해 사건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재판부는 이를 가장 면밀하게 검토하였습니다. 피해자 A는 자전거를 몰고 오다가 삼거리를 직진하는 자동차를 보고 급히 제동을 가하였고 급격한 제동의 여파로 자전거 안장에서 지면으로 고꾸라져 추락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결국 피해자가 `날아왔다'고 함은 주행 관성 때문에 피해자가 자전거로부터 약 1m 앞쪽의 노면에 추락한 사실을 지칭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노면에 떨어져 구른 거리를 감안하면, 실제로 피해자가 `날아'간 거리는 채 50∼60cm도 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한편 자동차는 4차선 도로 중 2차선과 3차선의 중앙 부분에 걸쳐서 주행하고 있었기에 이 사건 피해자 운전의 자전거가 삼거리에 진입하는 모습을 어느 정도 사전에 확인할 수 있는 상황임이 인정되었습니다. 결국 항소심 법원은 1심 민사판결과 달리 원고 승소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민사 항소심 판결의 결론이 달라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기실 위와 같은 증거는 앞서 형사재판과 민사1심 재판에서도 이미 세밀하게 검토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명쾌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없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모호한 사건에서는 무의식적인 심증의 형성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안의 정확한 진상을 토대로 규범적 판단을 해야 하는 법원으로서는 재판에 현출된 특정 단어나 묘사의 뉘앙스로 인해 최종 판단에 편견이 초래되는 결과를 경계하기 위해 상상 이상의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 사건에서 변호인은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피고 및 1심판결이 사용한 `날아왔다'는 표현을 집중 공격하였고, 그 결과 위와 같은 승소판결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단 한마디 말에 승소와 패소를 오가는 것이 재판입니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옛 속담, 괜히 나온 건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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