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라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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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라는 현실
  • 유성원 목사
  • 승인 2009.05.20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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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은 유행이되 편지가 없는 오늘은 사랑의 현실이란 없음을, 현실에서는 추억의 현실만 존재함을 정확하고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런 오늘, 책을 한 권 선물 받았습니다.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란 제목을 단 재미난 글들이 저와 마주했지요. 100이란 숫자에는 숫자로 환원되지 않을 무수한 의미의 세계가 충만하게 내비쳤습니다. 때문에 `숫자의 횡포'라는 책의 논리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지요. 세어보지 않았으니 정확한 가늠은 어렵겠지만, 숫자를 매개로 삶의 현실을, 그 생생한 하루를 이처럼 간단하고도 빼곡하게 담아낸 글은 좀처럼 많지 않을 겁니다.

이 책은 도넬라 메도스라는 여성이 신문에 낸 칼럼이 묶인 책, `세계 시민' 가운데 수록되지 않은 에세이가 우연하게 인터넷을 타면서 수많은 네티즌들이 살을 붙인 글줄기들을 이케다 가요코라는 일본인이 편집하고 구성해낸 공유물입니다. 공유의 매개는 책을 살펴보니 아마도 `희망'인 것 같아요. 희망은 매개이자 메시지이기도 하구요. 해설의 에른스트 블로흐를 들지 않더라도 (이후에 덧붙여진) 말미의 글을 보니 더욱 명확해집니다.

"perhaps, if enough of us learn to love our village it may yet be possible to save it from the violence that is tearing it apart"

"진정으로 나, 그리고 우리가 이 마을을 사랑해야 함을 알고 있다면 정말로 아직은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갈라놓는 비열한 힘으로부터 이 마을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꼭"

숫자에는 지금, `당신의 가치'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가를 환기시키는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하는 바 아니나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눈에 괜한 시비를 걸고 싶은 이유는, 여느 책들처럼 󰡒안되어 있는 현실이니 그렇도록 해야한다󰡓는 논리를 피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사랑을 말하고, 정의를 말하고, 희망을 말할수록 그것은 아득한 추억의 편린임을 오늘의 현실은 무시무종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이미 오늘은 사랑과 정의와 희망으로 가득차 있으며 그것으로 충만한 것이 삶임을 인정한다면 "안되어 있는 현실󰡓 운운하게 되지는 않겠지요. 현실과 희망을 다르게 보지 않고, 그렇다고 하여 등가물로도 보지 않고 희망으로 가득차 있는 눈으로 보았다면 "삶이란 그런 것이다"라는 현상의 서술로도 이 책은 이미 그 역할이나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성취했을 것입니다.

며칠 전,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뭐냐?󰡓라는 물음을 받았고, 그에 대한 대답이 사랑과 평화와 행복이 가득한 `가정'에서 찾아졌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데는 조건이 있음을 또 들었지요. 논리적으로 보자면 앞서 소개한 책과 같습니다. 희망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 가족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 지구촌의 식구들을 사랑하는 것에 있지요. 그리고 그 사랑에는 조건이 있구요.

저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세상이라고 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찾아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세상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서의 세상으로 사랑하자는 생각. 추억의 현실을 사랑의 현실로 돌리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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