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rgo, 천천히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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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rgo, 천천히 행복하게
  • 유 성 원 목사
  • 승인 2009.04.2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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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F.Handel(1685~1759)의 largo를 들으면서 곡과 곡명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필경 사고의 내용과 사고하는 자의 관계와 같을 것이라고 여기면서, 또 일감과 일하는 자의 관계와 같을 것이라고 여기면서. 일감이 없으면 일하는 자가 없고, 일하는 자가 없으면 일감은 일이 아닐 것이라고 여기면서. 부연할 필요도 없이 사고의 내용과 사고하는 자의 관계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관계에 `그렇게 있는' 것이라고 분명히 하면서.

있음과 없음의 관계성에 대한 선험적 종합판단을 largo를 들으면서 感하게 된 바, 인터넷 사전을 뒤적이니 largo의 뜻이 대략 이러합니다 : 󰡒이탈리아 말로는 `폭넓게', `느릿하게'라는 뜻으로, 음악에서는 `아주 느리게'라는 빠르기표로 사용되며, 동시에 `극히 표정 풍부히' 연주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헨델 작곡의 오페라 《세르세》 중의 라르고의 빠르기로 씌어진 아리아 〈그리운 나무그늘 Ombra mai fu〉은 `헨델의 라르고'라는 곡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관현악곡으로도 편곡되어 있다.

"largo의 가지 단어를 찾아보니까 재미있었어요. 가령 이렇습니다. large-statured는 교목과 관목으로 이루어진 삼림을 일컫는 말이고, large-souled는 너른 품을, lark는 새가 우짖는 소리를 나타내는 말이었지요. 그러니까 곡의 속도를 나타내는 음악언어 largo에는 삶의 공간성과 시간성이 풍부하게 담겨있다는 얘기지요. 그런 이유로 불안하고 또 빠른 시기라고 여겨진, 곧 삶의 진정성을 위태하게 이어가는 오늘을 내가 살고 있다고 여긴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곡으로 여겼나 봐요. 요컨대 자연한 삶을 향유하지 못한 채, 한편으론 조급증에 걸려 또 한편으론 스스로를 위축시키면서 만들어진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긴장을 largo가 largo로 바꿔주었다는 얘기지요.

largo를 말하다 보니 얼마 전 있었던 일이 생각나네요. 소모씨가 제 이름 앞에 무슨 호인 것처럼 `牛步'라는 말을 붙여 부르는 거예요. 이 무슨 말인가 했는데, `황소걸음'을 그렇게 말한 거였어요. 사연인즉슨, 용가슴 황소걸음을 읊조리면서 때때마다 나 스스로에게나 힘들어하는 이가 있으면 󰡒서두르지 말고 우리 황소걸음을 걷자. 용가슴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하곤 했었거든요. 그 `용가슴 황소걸음'을 기억하던 그가 그렇게 부른 거였지요. 그래서 덧붙였지요. `龍心牛步'라고.

"삶은 그런 거지"하고 말하는 순간 "그런 삶"은 사라지는 거지만, "그런 삶"을 알게 하는 음악이나 사람이나 그 무엇과 만나는 것은 행복하고 기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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