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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 성 원 목사
  • 승인 2009.03.2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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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 달 샘

옷을 입어본 이들은 다 아는 상식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래 옷 걸치지 않은 이들이 없었으니, 인류사에 걸쳐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요. 옷 한 벌에 따라서 전신의 옷과 장신구가 그 옷의 색상과 질감과 형태에 새롭게 맞춰져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꼭 사지는 않더라도 한번쯤 새 옷에 맞는 다른 살 것을 생각하거나, 이미 있었던 옷 가운데 새 옷에 맞는 것만 골라 입게 되는 경우를 당신도 겪은 적 있지요? 신발이나 머리스타일 등도 바뀌어야 하구요.

하나를 가지면 전부를 가지지 못한 것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듯합니다. 하지만 무소유의 소유를 아는 사람은 하나를 갖지 않음으로써 전부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이지요. 새 옷 한 벌을 없이 함으로 하여 이미 걸친 낡은 옷의 가치와 유용함과 고마움을 늘 느끼며 사는 일은 생태학적으로나 경제학적으로나 귀중한 일입니다. 철학, 종교적으로도 그렇지요. 생각의 범위를 잠깐 확장해보면, 그래서 `오래된 미래<&28145>라다크로부터 배운다'는 책이 있고, 유기농의 간절함이 있으며, 나눔의 중요성 또한 강조되는 것이겠지요.

빈 손, 빈 마음이 존재를 낳고, 그리 존재함으로써 자유와 행복을 소유한다는 사실은 여러 종교에 두루 걸쳐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작금, 소유의 천국인 자본의 왕국에서 존재의 진리를 터득(이란 말을 쓰는 것도 불행한 일입니다. 그게 도 닦듯 할 일이 되어버렸으니)한 이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음악이 좋은 것은, `물화'되지 않는데 있는 듯 합니다. 물론 CD에 담겨 팔리지만 본질이 어디 손에 확연히 잡히는 것인가요. 소리를 향유하는 일이 `경청'에 있음을 안다면, 우리의 존재함 또한 더 풍요해 질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의 문제는 어떤 소리를 듣는가 와도 직접성을 갖습니다. 여하튼, 소리가 그물에 걸리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존재함도 걸림과 막힘없이 흐르는 물처럼, 또 탐심(貪心)없이 무소유의 소유를 실천하는 가운데 가능하겠지요. 물이 바위를 가지고 흐르지 않는 이치를, 소리가 물질을 실어 나르지는 않는 이치를, 우리의 몸과 마음이 배울 일입니다.

우리가 더듬어 찾을 우리 안의 거룩의 흔적이 있다면, 물화되어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거룩의 눈으로, 거룩의 귀로 경청해야지요.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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