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무엇이 중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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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무엇이 중한디?
  • 황윤숙 교수(한양여자대학교 치위생과)
  • 승인 2020.10.22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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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여자대학교 치위생과 황윤숙 교수
하루는 수첩에 기록된 일들을 점검하면서 시작된다. 인간 기억력에 한계가 있는지라 잊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업무를 제시간에 완결을 위한 오랜 습성이다. 프로 직장인들은 스케줄러를 사용하기도 하고, 또 다른 그룹은 핸드폰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사람이 구식이라 그런지 아직 펜과 종이가 익숙하고 편안하다. 어떤 날은 3~4개로 끝나지만 어떤 때는 번호가 두 자릿수로 나열되며 업무용 수첩 한 페이지가 부족할 때도 있다.
 
한 사람이 하루에 수행 할 수 있는 일에는 물리적, 시간적 능력의 한계나 제약이 있어 동시에 여러 일을 할 수 없지만, 40여 년 직장 생활 중에 터득한 시간 활용과 업무의 우선순위 배열에 의해 다소 과한 업무들을 헤쳐나간다.
 
목록이 길 때 우선적인 선택은 목록 끝의 적힌 마감 날짜이다. 그리고 날짜 끝 작은 표시는 마감일에 하루나 이틀 정도 여유가 있음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당해야 하는 일의 넘쳐 날 땐 페이지를 구분하여 개인적인 일과 공적인 일을 나눈다. 미장원을 가야 하는 일, 가족들 생일 선물을 보내는 일 등의 개인적인 일들은 공적인 일과 만나면 미안하게도 항상 뒤로 밀리게 된다. 불편함과 이해를 담보로 하여.

공적인 일을 나열한 뒤에 또 구분을 한다. 반드시 내가 해야 하는 일인지 아니면 다른 이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인지, 이 경우는 적임자를 찾아 마음을 담아 간곡히 청을 드려야 한다. 그리고 남은 일 중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협조를 얻어야 하는 일인지를 선택한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잠을 줄이거나 나의 시간을 쪼개면 되는 일이나 협업을 해야 하는 경우는 그들의 각자 사정과 업무 처리 속도 등등이 다르기에 좀 서둘러 시작을 해야 한다.

그렇게 정리함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간에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발생할 때가 있다. 특히 그 업무가 소소한 일상과 직업에서 파생되는 업무 외에 전문가로 이웃과 지역 주민의 건강을 위해 함께 해야 할 일들일 때는 좀 더 신중하게 우선순위를 선정한다.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는 이 선택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가? 이 결정의 수혜 대상이 누구인가? 이 일은 얼마나 시급한가? 일을 진행할 때 가용 할 수 있는 자원은 무엇인가? 등등… 거기에 덧붙여 항상 공익성을 생각한다. 즉 내가, 그리고 우리가 좀 더 손해를 보더라도 전문가로서의 명분과 정당성과 윤리적 판단에 다수의 의견이 반영되어 있는지를.
 
한 개인의 수첩에 적힌 목록에서도 일의 우선순위 결정에 여러 규칙과 질서에 따라 고민을 하는데, 정부나 지자체 등 주민들에 대한 영향력이 큰 조직들은 판단에 신중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의문이 생긴다. 국민건강과 관련된 단체들은 이웃들에 대해 영향력을 고려한 판단을 함에 있어 공익, 윤리, 평등 이런 단어들을 결정의 우선순위에 놓고 판단하는 것일까?
 
최근의 파업과 국시 거부 등의 결정과 행동을 한 의료전문가들의 판단은 앞서 말한 단어들과는 멀어 보인다. 그들은 무엇이 중요했을까? 그들의 판단에는 사익, 관습, 불평등 이런 단어들이 우선시 되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코로나 시국의 파업은 그동안 국민들이 보여준 신뢰에 등을 돌리는 행동이 되었다.
 
집단행동의 발단은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필자에게 제일 크게 보인 것은 의사가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 이은 치과계 단체의 의료계 파업에 대한 지지, 그리고 그 맥락을 같이 하는 SNS의 글들을 보면서 씁쓸함을 느낀 것은 필자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알고 있었지만 확인된 생각 몇 가지.
 
‘아 자기 직종의 인력이 늘어나는 것을 싫어하는구나.’
‘아 자신들의 문제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엄청나게 싫어하는구나.’
 
치과계의 과거가 회상된다. 치과계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매년 몇백명씩 치위생(학)과 신입생을 증원했던 일들이... 그럼에도 인력수급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고 엄청난 비용으로 양성된 인력들이 조기에 치과계를 떠나 전직을 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번에는 새로운 인력양성제도를 만들겠다고 한다.
 
보통의 정책들은 기존의 상황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데 과연 새로운 제도 제안이 근거에 기반을 둔 절차에 따라 제안되었을까? 만약 외국에 그런 제도가 있다고 그 정당성을 찾는다면, 외국의 치과계에서 치과위생사는 어떤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여타 인력과의 업무 차이는 어떤 것일지 함께 조사되었을까? 어떤 제도 도입에는 시범 사업이라는 것이 있고 서로가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 있는데 그런 생각에 기초한 일일까?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며, 또 문장들이 입안에 맴돈다.
 
‘아 자기 직종의 인력이 늘어나는 것을 싫어하는구나.’
‘아 자신들의 문제에 외부가 개입하는 것을 엄청나게 싫어하는구나.’
‘그럼 치과위생사들의 마음도 알겠구나……’
 
무엇이 중할까? 국민의 구강건강을 위해 교육과 훈련이 된 전문가에 의해 제공되는 구강건강관리의 서비스 제공이 우선일까? 아니면 ‘우린 이익집단이니까’, ‘우리 다수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익을 우선으로 해야 하니까’를 주장하며 단기 양성에 의한 당장의 인력수급이 중요할까?
 
한 개인의 일상과 업무 추진에도 여러 고민과 관계인들과 연계, 협업을 고민하는데 하물며 인력 양성이라는 교육의 백년대계 앞에서 몇 년 뒤를 바라보지 못하는 조급한 성과 내기와 근시안적 제도에 대한 우려를 금치 못한다.

앞선 파업의 결과를 통해 각자들은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의료계 파업’과 ‘인력양성 및 활용’을 분석한 학생들의 보고서에 공익, 평등 그리고 이웃에 대한 윤리적 고민의 철학을 담아내는 미래의 전문가들을 만난다.

함께하는 희망은 오늘도 목록이 빼곡하여 숨 가쁜 수첩을 보면서도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이럴 때 희망은 사람들과 함께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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