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노동조합의 탄생과 미래 사회 노동조합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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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노동조합의 탄생과 미래 사회 노동조합 전망
  • 하종강 교수(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 승인 2022.10.27 10: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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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교수
최초 노동조합의 탄생
공기업 노사 한마음 수련회에서 내 앞 강의를 맡았던 ‘사측’ 강사가 거의 으름장을 놓는 분위기로 강의를 시작했다. “인류 역사 최초의 노동조합은 자본가들이 만들었습니다. 노동조합에 대해서 뭘 좀 제대로 알고 하세요.” 그 뒤 더 자세한 설명을 하지는 않았으니, 마치 자본가들이 최초의 노동조합을 만들어 노동자들에게 선물로 준 것처럼 오해하기 딱 좋은 표현이다. 그 강사의 주장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17~18세기 이른바 ‘메뉴팩쳐 시대’의 수공업적 노동자는 ‘장인(artisan)’이었다. 쉬운 말로 표현하자면 지금 대학교수급의 특권층이었다. 당시의 노동자는 숙련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고 일하는 모습도 지금의 노동자와는 전혀 달랐다. 점심시간에 아내가 점심을 싸 오면 점심 먹느라고 두어 시간씩 소비하기도 했고, 요구 사항이 있으면 점심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파업’의 효과를 쉽게 발휘할 수 있었으므로 새삼스럽게 단결하거나 단체행동을 할 필요도 없었다. 식민지 경제가 상품의 수요를 전 세계적으로 창출했으나 상품을 생산하는 숙련된 노동자의 일손은 부족했으므로 이들의 특권은 갈수록 강화됐다. 기록에 의하면 나중에는 일주일에 4일 정도만 일하기도 했다.
 
중세를 지탱하고 있던 ‘장원(manor)’이 해체되면서 해방된 농노와 몰락한 영주와 실직한 기사들과 그 가족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당시 도시 인구의 70% 정도는 일정한 직업이 없는 날품팔이 대중이 차지하고 있었다. 중세 말의 도시가 시대 배경인 영화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뒷골목이나 광장을 배회하는 남루한 누더기를 걸친 무리들이 바로 그 사람들이다. 당시의 노동자는 그 날품팔이 대중 위에 군림하는 소수의 특권층이었고, 숙련 노동자들 중에서 자본을 축적한 사람들은 소생산 자영업자로 성장했다.
 
이들의 특권은 기계가 생산에 투입되면서 점차 파괴되기 시작했다. 19세기에 이르러 섬유·정미 산업 등 일종적 공정의 기계화는 거의 완성태에 도달했고, 그 분야의 숙련 노동자들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기계파괴운동(Luddite)’은 이에 대한 특권층 수공업 노동자 및 소생산 자영업자들의 저항이었다. 당시 기계를 파괴했던 사람들의 주역은 우리가 막연히 짐작했던 것처럼 “헐벗고 굶주린 노동자 대중”이 아니었던 것이다. 특권을 상실하는 계층의 저항이 기계파괴운동의 본질적 성격이다. 
 
특권을 상실하기 시작한 수공업 노동자 및 소생산 자영업자들이 조직한 것이 바로 인류 역사 최초의 ‘노동조합(trade union)’이다. ‘노동조합’이란 단어의 영문 표기 ‘trade union’ - 이 말 속에 ‘노동’이란 의미의 단어가 아니라 ‘거래’를 뜻하는 ‘trade’가 사용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뿐만 아니라 공정한 ‘거래’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최초의 노동조합은 자본가들이 만들었다”라는 말은 그런 뜻이다.
 
역사적으로 노동조합의 출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노동조합은 탄생하면서부터 “특권을 상실하는 계급이 그 필요성을 인식한다”라는 성격을 숙명처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특권층 노동자의 출현
대다수 수공업 숙련 노동자들의 특권은 생산에 기계가 투입되면서 분쇄되었으나 여전히 특권층 노동자는 존재했다. 다름 아니라 기계를 만드는 새로운 형태의 숙련 노동자들이었다. 기계의 수요가 대량으로 요구되었으나, 수많은 부품들이 노동집약적으로 조립돼 완성되는 기계는 여전히 소수의 숙련된 금속 노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막대한 수요에 비해 공급은 태부족이었다. 금속 노동자들이 새로운 특권층 노동자로 부상했다.
 
이 고숙련 금속 노동자들의 특권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기계 조립 공정이 자동화되거나 ‘기계를 생산하는 기계’ 곧 로봇(robot)이 도입되면 금속 노동자들의 특권 역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공정이 복잡해 자동화가 쉽지 않거나 ‘기계를 생산하는 기계(robot)’가 개발되지 않은 상태라면 그 다음에 자본가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기계를 조립하는 노동자들을 기계처럼 일하도록 만드는 공정을 개발하면 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이른바 ‘테일러-포드 시스템(Taylor-Ford System, Taylorism & Fordism)’이다. 테일러 시스템은 주로 선행적 부품 공정에 투입됐고, 포드 시스템은 주로 완제품 조립 공정에 투입됐다. 50년의 세월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이러한 시스템들은 전 세계의 모든 공장을 관철하며 생산 공정을 물 흐르듯 진행시켰다. 금속 노동자들은 거대한 생산 공정에 갇힌 물방울 같은 존재가 돼 버린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적나라하게 풍자한 영화가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의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이다.
 
특권을 상실하는 금속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시작했고 전 세계적으로 금속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의 중심 세력을 형성했다.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흔히 ‘금속노조’가 가장 센 노조의 상징으로 거론되고, 실제로 자동차 회사와 전자 회사 노조들이 강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다.
 
새로운 특권층 노동자가 출현하고 그 특권이 소멸하는 과정이 자본주의 이행 과정에서 되풀이됐고 특권을 빼앗기는 노동자들이 새로운 노동조합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곧 이 말은 앞으로도 특권을 빼앗기는 노동자들이 계속 출연하는 한, 새로운 노동조합 역시 계속 출현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뜻이다.
 
정보화 사회의 노동자
우리가 말하는 이른바 ‘정보화 사회’, ‘지식 기반 사회’, ‘고도 산업사회’, ‘4차 산업혁명 시대’로의 이행도 결국 이러한 변화의 연속선상에서 이루지고 있는 것이다. ‘지식 기반 사회’란 지식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사회, 곧 지식인이 노동자가 돼야 하는 사회라는 뜻이다.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고학력·고숙련 노동자의 대량 수요를 창출하는데 이 노동자들의 특권은 점차 빠른 속도로 소실되고 있다. 석·박사 학위를 가진 노동자, 영화와 컴퓨터 등 멀티미디어 산업 종사자, 프로듀서·기자 등 언론 종사자, 벤처기업 노동자 등 한 때 특권층이었던 ‘화이트칼라’ 또는 ‘골드칼라’ 노동자들은 이미 예전보다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스마트폰, 노트북 컴퓨터 등 문명의 이기들은 이 노동자들을 업무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 강도를 높이는 데에 기여한다. 지식 서비스 노동자들은 이제 길을 걷거나 집에 있을 때에도 심지어 가족들과 휴가를 가서도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하나의 작은 예로 ‘Panopticon System(범감시체제)’은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일하는 노동자라도 거의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빌 게이츠(Bill Gates)’는 한국에 와 있는 동안에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본사 말단 직원의 업무까지 직접 지시 감독할 수 있었고, 플랫폼에 묶인 긱 노동자(gig worker)들은 형식상 독립된 계약자이지만 플랫폼의 AI(인공지능)에 의해 분·초 단위까지 업무를 파악하고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무직·생산직·공공서비스직 노동자, 두뇌·육체 노동자의 구별이 없이 일하는 과정 전체가 ‘유리처럼 투명한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 ‘유리처럼 투명한 공간’을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은 농촌의 읍사무소에서부터 대재벌의 빌딩까지 관철하지 않는 곳이 없다. 
 
미래 사회 노동조합의 전망
노동조합은 이 새로운 현상에 조응하면서 계속 변화 발전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노동조합 조직률이 하강하는 국면에서도 새로운 지식 공공 서비스 분야의 노동조합이 계속 출연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선진국에 판사·변호사·의사 노동조합이 설립되고, 국가정보기관의 비밀첩보 요원까지 노조에 가입하고, 장·차관까지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현상은 노동조합이 새로운 변화에 조응하면서 발전하는 모습에 다름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조합원들이 전원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노동조합이 탄생하는 등 고학력 전문직 노동자들이 새로운 노조를 설립하는 것도 그러한 변화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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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숙 2022-11-09 21:06:39
글을 통해 잘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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