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직업병과 산재 사고 등 산업재해 문제를 보는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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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직업병과 산재 사고 등 산업재해 문제를 보는 시각
  • 하종강 교수(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 승인 2023.06.0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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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교수
하종강 교수
건강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
어느 중소규모 병원의 원장이 쓴 칼럼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내 기억대로 옮기자면 그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았다.
 
“방송에 출연해 건강 강좌를 하면서 유명해진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전혀 하지 않는 얘기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 사람들이 하는 얘기는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컨트롤함으로써 건강을 유지하느냐’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운동 열심히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잠 잘 자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과식하지 말고, 정신적 스트레스 받지 않고 긍정적 사고방식을 갖고 살아가고... 하는 것들이다. 그 유명한 강사들은 주로 그 얘기만 한다.
그 사람들이 전혀 하지 않는 얘기들이 있다. 예를 들어, 다이옥신 사건을 보자. 어떤 사람이 수십 년 동안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잘 컨트롤함으로써 건강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자. 그러나 그 사람이 다이옥신에 오염된 돼지고기를 먹는 순간 수십 년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러니까, 개인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환경과 제도와 정책과 구조에 관한 것인데, 유명한 강사들은 그러한 것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업무에서 영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의사가 쓴 글이어서, 그 짧은 칼럼에 많은 영어가 섞여 있었지만, 그 내용을 번역하고 요약하면 위와 같은 내용이었다. 건강에 대해 강의하는 유명한 강사들이 사회의 환경과 제도와 정책과 구조에 대하여 얘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잘 모르거나, 아니면 알면서 말하지 않거나
 
첫 번째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에 관한 공부를 오랜 기간 동안 하면서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대부분은 두 번째의 경우일 것이다. 그러한 내용들은 대부분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의 비위를 거스르는 것이어서 출세하거나 소득을 높이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만 탓할 일이 아니다
직장인들이 당하는 직업병이나 산재 사고 등 산업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얘기를 해 볼 수 있다. (‘산업재해’라는 말 대신 ‘노동재해’라는 말을 사용하자는 주장이 있다. ‘산업재해’라는 말속에는 직장인들이 일하다가 다치거나 병에 걸리는 것을 “산업사회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필요악”이라는 뜻을 은근히 숨기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실제로 다른 한자권 나라에서는 모두 ‘산업재해’가 아니라 ‘노동재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산업재해의 원인을 여러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겠는데, 각종 통계에 따르면 가장 많은 원인이 노동자의 ‘부주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통계 결과가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산업재해 보상을 신청할 때 제출하는 ‘요양신청서’가 주로 통계자료로 활용되는데, 대부분의 요양신청서들이 당사자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에서 회사 담당자에 의해 작성되기 때문에 가능한 한 회사의 책임은 축소하고, 노동자의 책임은 크게 부풀리는 방향으로 기재하는 경우가 많다. 법원 판사들도 그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요양신청서에 기재된 사고 내용은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나라마다 통계 산출 방법 등이 달라 단순 비교하는 것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고려해도 “대한민국은 세계 최악의 노동재해 국가”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1994년 이후 통계가 제공되는 2016년까지 23년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대한민국의 산재사망률은 21번이나 1위를 차지했다.
 
앞서 설명한 각종 통계들에 따르자면 그렇게 된 원인은 결국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부주의한 노동자이기 때문일 수밖에 없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논리이지만, 백보를 양보하여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부주의했다고 하자. 그 이유가 무엇일까. 태어날 때부터 남달리 부주의한 국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누구나 그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제도와 정책과 구조에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떠오르는 것은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여전히 세계 최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많이 일하는 사람들의 주의력이 가장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산업재해와 더불어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교통사고 발생률이다. 그 원인 역시 한국의 운전자들이 남달리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기보다 대부분의 자가용 소유자들이 세계 최장시간 노동을 하는 직장인들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다시 말해, 직업병과 산재 사고 등 산업재해는 그 노동자의 잘못이라기보다 우리 사회의 책임이다.
 
산업재해를 인정받는다는 것의 의미
우리나라는 무상의료 제도가 시행되는 사회는 아니어서 오래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가 생기면 가정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치료비뿐만 아니라 치료받는 기간 동안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니 흔한 표현대로 “집안 기둥뿌리가 뽑히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직업성 요통 환자들의 산업재해 상담 과정을 많이 봐 왔는데, 비슷한 과정을 밟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허리가 점점 더 많이 아파지면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 본다. 검사 결과에 큰 이상이 없는데 본인은 아프다고 호소하면 ‘요추염좌’ 또는 ‘요부염좌’ 진단을 받고 물리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
 
증상이 개선되면 ‘이제 나았구나’ 싶어서 다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일을 계속하면 당연히 또 통증을 느낀다. 병원에 가서 다시 치료받고 또 일하고 치료받고 또 일하고…. 그런 악순환을 되풀이하면서 병이 깊어지거나 어느 날 작은 사고를 당해 허리를 못 쓰게 돼 결국 ‘추간판탈출증’이나 ‘수핵탈출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산업재해 인정 절차를 시작하는 상담 케이스를 여러 건 접했다.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해 통원 치료를 하고 이제 더 이상 치료를 해도 효과가 없고, 더 이상 치료를 하지 않는다 해도 특별히 악화하거나 하지 않을 때, 곧 상태가 고정됐을 때 치료를 마치게 되는데, 다행히 완치돼 업무에 복귀하는 경우도 있지만 장애 진단을 받는 경우도 많다.
 
그 노동자가 허리의 질병을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가정해 보자.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빚을 내거나, 전세 보증금 빼내서 월세로 가거나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게다가 집안에 환자가 생기면 생활비는 훨씬 더 많이 드는데 치료 기간 경제활동을 못해 소득이 없을 뿐 아니라, 간병하느라고 가족 중 한 사람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집안 기둥뿌리가 뽑히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다.
 
만일 그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인정을 받았다고 하자. 우선 치료비(요양보상)가 전액 다 나온다(원칙상으로는 그렇다). 치료기간 동안 자기 임금의 70%(휴업보상)를 받을 수 있다. 치료가 끝나고 장애가 남은 경우 충분하지는 않지만, 장해보상도 받을 수 있다. 넉넉하지는 않겠지만 근근이 살아가면서 집안 기둥뿌리가 뽑히는 것을 면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서는 직장인이 자신의 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받느냐, 못 받느냐에 따라서 개인의 삶은 물론 가계 전체가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필요성
2015년 10만 명당 노동재해 사망자 수가 영국은 0.4명인 데 반해 한국은 10.1명이었다. 한국의 직장인은 자기 업무 때문에 사망할 확률이 영국 직장인보다 25배나 더 높다는 뜻이다. 영국과 한국의 분명한 차이 중 하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라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은 ‘기업 과실치사 및 기업 살인 처벌법’을 제정한 이후 산업재해 사망률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2천 명 이상이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산업재해 사망률이 세계 최고에 해당하는데 그동안 정부가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으나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사업주가 받는 처벌은 매우 미미했다. 일례로 2008년 40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의 경우 기업은 2천만 원의 벌금 처분을 받았을 뿐이다. 형사 처벌의 벌금과 민사 손해배상금이 물론 다른 개념이지만 노동자가 40명이나 사망했는데 기업이 2천만 원의 벌금 처분만 받으면 유가족 입장에서는 “그럼 노동자 한 사람 목숨 값이 50만 원이냐?”는 항의가 나올 수밖에 없다. 기업이 안전보건 조처를 제대로 하지 않아 노동자가 사망했을 경우 사업주가 받는 처벌이 편의점 사장이 청소년에게 담배를 팔다 걸려서 받는 처벌보다 미약하다면 어느 사업주가 노동자 안전보건에 신경을 쓰겠느냐는 것이 당시 노동계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필요성을 주장한 이유였다.
 
거의 최후의 수단으로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도입해 안전보건 관련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사업주에게는 사업 운영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강력한 처벌을 하도록 했으나, 입법 과정에서 내용이 많이 완화돼 실효성을 상실한 법 규정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안에서도 그 법안 제정에 반대하는 의견이 만만치 않게 있었다. 노동부에서 마련한 ‘노동부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부안’이 되면서 노동자 보호 조처와 사용자 처벌 조항이 축소됐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통과된 ‘국회안’은 ‘정부안’보다 더 후퇴한 내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부 내각 구성을 보면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중소벤처기업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등은 대부분 기업의 입장을 대변한다. 노동자와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부처는 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 정도뿐인데,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기업의 눈치를 살피는 정치인·관료의 수가 노동자와 서민의 눈치를 살피는 정치인·관료의 수를 압도할 만큼 많다는 뜻이다. 직장인들이 다치거나 병들지 않고 안전하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도 결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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