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토씨에 대한 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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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토씨에 대한 관조
  • 유성원 전도사(정읍 / 중광교회)
  • 승인 2007.04.2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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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가장 어울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대개 끽연이나 분위기 있는 카페를 들곤 합니다. 저는 신문이라고 여겨요. 낱낱이 지면에 찍힌 글자와 커피의 피어오르는 습한 향기가 제겐 기분 좋은 울렁임이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그런 현상이 어디서 연유했는지 찾기도 합니다. 이내 발견하는 이유는, 쉼과 여유를 찾는 시간을 통해서지요. 바삐 굴러가는 세상 속에서 그나마 삶을 여유롭게 관조해 볼 수 있는 오전시간에 커피와 신문은 퍽 어울려 보입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한 손에 성경을 다른 한 손엔 신문을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상징의 말이기도 한데요, 하나에 치우치면 균형감각을 상실한다는 필요에서겠지요. 커피 없는 신문과 신문 없는 커피를 제가 일종의 결여나 결핍으로 생각하는 바와 그 구조가 같습니다. 성경과 신문, 커피와 신문. 이처럼 명사와 명사를 잇고 관계 맺는 우리말 문법을 이음토씨라고 하지요.

삶의 문법에서 이음토씨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나 이외의 모든 세계와 사람은 이음토씨를 통해서 나와 연결되고 의미를 갖게 되고 나를 생생하게 만들어주며 나 아닌 너마저 살아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음토씨를 주의해 살펴보면 서로간의 관계지평과 관계깊이를 알 수 있지요. 나를 나 되게 하고 너를 너답게 만들어주는 우리말 문법을 삶으로 체득한 경지. 이를 논어에서는 화이부동이라고 하지요. 신토불이란 말도 이음토씨의 의미를 잘 드러내줍니다. 유대인 철학자 마틴 부버의 책 `나와 너'가 얘기하는 바도 다르지 않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사람들은 만남을 가지면서도 정작 만남의 이음새를 깃들여 견고하게 만드는 이음토씨와는 상관없이 제 잇속에 주목하기만 합니다. 예를 들 필요도 없이 나와 관계하는 모든 것들 가운데 대부분은 내 경제와 정치와 문화와 여타 다른 필요에 의해 주눅 들거나 나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지 않은가요? 이번 달 얘기는 여기서 맺음하려고 합니다. 다만 당신의 이음토씨를 사랑으로 수놓기를 바라는 계절, 봄입니다.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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