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 않은 일들이 생길 때마다 속다짐하는 말이 있습니다. 상황에는 냉정하고 현실에는 너그럽자. 심정적 대처방법이지요. 친구에게도 같은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나 착한 사람들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났을 때(when bad things happen to good people, harold s. kushner) 행복의 실효를 거두게 할 만한 말이나 여타의 도움은 세상에 없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우연한 사고는, 세상은 행복이나 선을 허용하지 않는 곳이라는 생각마저 갖게 하더군요. 이러다 상황이 더 악화되기라도 한다면 없는 신들까지 불러내어 따지게 될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부모님과 함께 원주기독병원 중환자실에 다녀왔습니다. 사람의 역사 대부분이 오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면 가족이나 절친한 이들에게 일어난 사건들은 헤아릴 수 없는 깊이의 아픔을 동반합니다. 냉정을 찾는다는 일이 오히려 죄 짓는 일에 가까울 정도로 그렇습니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는 분께서 왜 착한 사람을 다치게 하십니까? 어느새 기도는 의문부호로만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용섭이는 국민학교 시절에 만난 앞으로도 변함없을 친구입니다. 친구 가족과 제 가족 또한 신앙의 연으로 맺어진 다함없는 인연입니다. 숱한 인연 가운데서도 저 분들처럼 `착한' 이들이 또 있을까, 싶은 분들이 용섭이 부모님입니다. 그런데 신년벽두를 앞둔 12월의 어느 날 4톤 화물차가 그 분들이 타고 가던 차를 뒤에서 들이받았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처럼 웃고 울리는 말이 없겠지만 가해 차량 바로 뒤에는 구급차가 사고 전부를 목격하고 있었고, 그 뒤에는 경찰 차량이 뒤따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사고 시점부터 응급실로 이동하기까지 15분여 정도의 시간만 소요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가족과 문안 오는 이들도 그저 감사하다고 말은 하지만 호흡기에 여전히 의지해 계시는 용섭이 아버지를 생각하면 두 눈 글썽해집니다.
누구나 한두 가지 이상의 풀리지 않는 사연을 갖고 삽니다. 도움을 구할 수도 없고 도움을 줄 수도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신년을 맞아 모두의 건강과 다복을 기원해야 하겠지만 사연들 속에서 저 또한 어쩔 수 없는, 거저 감사하지는 못하는 속된 사람임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정작 무엇이 잘된 일이고 무엇이 잘못된 일인지를 참되게 알고 싶습니다.
그것은 부활과 순수의 계절이었다. 15명의 환자들과 우리들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그러나 우린 이제 그 기적의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 약 때문에 실패했다거나 또는 병이 재발한 것뿐이라고, 또는 환자들이 잃어버린 세월을 극복할 수 없었다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해야 할 현실은 우리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기적이 끝났을 때 또 다른 깨어남이 우리에게 일어났다. 그것은 인간정신이 그 어떤 약보다 강하고 그것이야말로 환자들에게 필요한 약이라는 것이다. 일, 오락, 우정, 가정…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이런 평범한 것들이 실은 가장 중요한 것이다.(영화 `사랑의 기적' awakenings 가운데 마지막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