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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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 유성원 전도사(정읍 / 중광교회)
  • 승인 2005.03.2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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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새벽에 마당에 나서니 달빛 아래 희미한 움직임이 보입니다. 움찔했습니다. 아직은 어둡고 외부의 자극은 늘 자기 방어의 본능을 갖게 하지요.

문득 뒷산에서 사육 당하고 있는 수많은 개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중 하나일까? 녀석이 들이치면 사방팔방 어디로 냅다 뛸까?

우려를 안도로 바뀌게 한 것은 폴짝폴짝 뛰어오르는 그 녀석 몸짓이었습니다. 깊디깊은 산중도 아닌데 그저 평평한 시골 마을인데 이곳에 산토끼라니! 우두커니 서서 눈길로만 갈색 털을 매만져줍니다.

미안하다, 여기에 네가 마실 물은 준비되지 않았구나, 이렇게 속말을 건네자마자 어떻게 눈치 챘는지 저 멀리 쏜살같이 사라지더군요. 어둠 건너 저쪽 편에는 달콤한 물이 준비되어 있겠지요.

그 일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예기치 않은 상황이나 사람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대접할 것인가?

제 안일에만 쫓기다가 묵묵히 헌신하는 주위 사람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를테면 장사를 하려는 사람이 팔만한 물건을 가져다 놓지 않은 꼴은 아닌가? 특정한 것을 담는 그릇보다는 그릇에 담기는 물, 바로 그것의 중요성에 관해서 깨닫는 계기였지요.

때마침 읽던 성경이 구약성서 가운데 `룻기'였습니다. 여주인공인 `룻'을 이름으로 정한 책입니다. 재미난 것은 이 이름의 말뜻입니다.

두 가지 유래가 전해지는데 하나는 시리아아카드어 `르우트'입니다. 그 뜻은 `친구'입니다. 다른 하나는 히브리어 `루트'입니다. `물을 만족하게 마시다'란 뜻입니다.

우리말로 `뿌리'를 일컫는 영어 `root'가 음성학적으로 보자면 이 히브리어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생각도 하게 됩니다.

물은 삶을 유지시키는 근원이자 뿌리가 몸을 담는 곳입니다. 뿌리와 뿌리들은 외따로 놓인 것 같지만 실은 물줄기로 하여 서로 더불어 함께 있습니다.

바야흐로 새싹 틔우는 계절입니다. 대지를 따사로이 감싸는 봄 햇살로 하여 얼었던 우리 마음도 녹을 것입니다.

뿌리와 뿌리가 물을 통해 하나이듯 우리는 따스한 마음으로 하나가 될 것입니다. 삶의 뿌리인 물 같은 친구들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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