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순간일지라도
상태바
한 순간일지라도
  • 유성원 전도사(정읍/중광교회)
  • 승인 2005.04.19 1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옹달샘

주일 오전이면 교회학교 아이들을 데리러 몇 개 마을을 다닙니다.

오가는 시골 차량이며 마을 분들을 보면 인사를 건넵니다. 인사만 하는 제가 실없어 보였는지 아이들은 의아해하며 묻곤 합니다. “저 분 누구세요? 전도사님은 왜 계속 인사하세요?” 실은 인사하는 대상이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인사합니다.

다른 의미에서 아이들은 인사가 만사라는 사실을 알아갈 것입니다. 지극히 짧은 한 순간의 마주침을 이보다 소중하게 대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물방울 한 알이 폭포를 이룹니다. 계단 한 칸이 놓임으로써 위아래가 이어집니다.

피아노 건반 한 음으로 곡이 황홀하게 율동합니다. 표정 없이 놓인 의자가 영원 같은 쉼을 제공합니다. 단 한 번 눈 깜빡임이 숱한 의미를 탄생시킵니다. 잘게 부서진 모래알갱이에 지구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한마디 말에 희비가 엇갈립니다.

한 순간에 세계사가 뒤바뀝니다. 화룡점점(畵龍點點). 단 한 순간일지라도 그 순간을 소중하게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쌓이고 겹치면서 바깥사람과 안사람이 조화를 이루고 더욱 풍요로워진다고 믿습니다.

최근 읽었던 책 가운데 한 켠을 옮겨 봅니다. 짧디 짧은 한 순간의 의미를 당신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근데 사실 방송 제일 초기에 기억에 남았고, 그 이후에 제 방송에 영향을 끼쳤던 것은 뭐냐하면 `1분 뉴스'를 했던 거였어요. `1분 뉴스'를 1년 정도 했던 것 같은데요. 그 후 했던 르포 프로그램에서 지금은 폐광이 된 강원도 장성 광업소에 있던 탄광에 취재를 간 적이 있었어요. 그곳의 어느 초등학교 복도에서 그림과 함께 자기 얘기를 써넣은 시화전 같은 것을 하더라구요. 근데 거기에 자기 아버지가 광부인 한 초등학생이 쓴 얘기가 있었어요. 어떤 얘기였냐 하면 어느 날 `1분 뉴스'를 보니까 자기 아버지가 갱도에 갇혔다는 얘기가 나오더라는 거예요. 당연히 온 집안 식구가 울고 난리가 났겠죠. 그리고 며칠 후 `1분 뉴스'에서 `아버지가 구출됐다는 소식이 나오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온 식구가 기뻐서 울었다는 얘기가 적혀 있었어요. 근데 그때를 보니 제가 `1분 뉴스'를 할 때더라구요. 그때까지만 해도 편성표에도 잡혀 있지 않은 프로그램이고, 굉장히 짧은 그야말로 1분짜리 방송이라 `내가 하는 이 일이 큰 의미가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어린아이의 그 글을 보고, 방송이 갖는 짧지만 강한 힘을 느꼈어요. 한 가족을 두 번 울게 ! 만들었잖아요. `슬퍼서 울게도 만들고, 기뻐서 울게도 만들고, 그런 것이 방송이 갖는 힘이구나, 아무리 짧은 방송, 구석에 박혀 있는 방송이라도 가치가 떨어지는 방송일 수는 없다, 대단히 중요한 방송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그런 일이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 때 느꼈던 것이 20년 가까이 방송하는 데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봐야겠죠.”(지승호 인터뷰집, 〈한국사회 탐구-마주치다 눈뜨다〉 가운데 `손석희 아나운서 인터뷰' 부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