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쏟아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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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쏟아지는 날
  • 유성원 전도사(정읍 / 중광교회)
  • 승인 2005.05.2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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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바야흐로 계절은 순환하고 변화합니다. 억지나 강요가 없습니다. 자연이라는 말뜻대로 스스로 그러합니다. 모판을 들고 금방 갈아엎은 논으로 향하는 마을 분들이 보입니다.

아직 논에서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적절히 물을 들인 논에 모를 다 심은 밤, 이윽고 개구리 소리가 들립니다. 신기합니다. 생명은 어디서 왔을까요? 고전 음악을 들려주면 식물들이 곱게 반응하며 이쁘게 성장한다지요. 그렇습니다. 땅의 온갖 소리들이 울리기 시작하면 모가 소리에 치대고 바람에 치대면서 자라납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땅을 갈아엎고, 모판을 만들고, 물도 들여야 합니다. 자신을 뒤바꾸는 치열한 노력과 빈곤하지 않은 창조력과 차이와 다름을 품는 포용력이 언제나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늘에 순응해 푸르러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순응은 그저 길들여짐이 아닙니다. 사람의 경험세계가 숱한 사연들로 채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소리와 바람에 치대면서 혹은 상하기도 하면서 자라나는 모처럼 사람도 그러합니다. 다르지 않습니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때에, 그러나 폭풍우와 같은 시련의 역사도 함께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개인사와 보편사가 일그러진 틀에 묶여 있었음을 돌아봅니다. 사람마다 빛바랜 사진 한 장 속 낱알처럼 작디작은 아픔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 공동의 세계에선 낙오자와 영웅이 뒤범벅으로 얽힌 나락의 흩어짐도 있었을 테지요.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바람이 세차게 붑니다. 소리로 하여 압니다.

그런데, 소리가 없다면 세찬 바람에 내 몸이 우선 부서졌을 터에 누군가 미리 바람을 맞아들였으니 내가 성하게 살아있습니다. 바람 소리는 누군가 나를 위해 제 몸 부순 소리입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분골쇄신한 소리가 될 수 있을까요?

햇살 눈부시게 쏟아지는 날이 많습니다. 빼곡하게 이겨둔 옷가지며 이불들을 커다란 대야에 물 한 가득 넣어 발로 또 손으로 치대면서 빨아 널어둡니다. 세탁기와 건조기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한 자연과 자연의 일부인 내 몸에게 맡겨 봅니다. 과거, 내 삶의 찌꺼기가 너 댓 시간이면 뽀송뽀송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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