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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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 유성원 전도사(정읍 / 중광교회)
  • 승인 2005.08.18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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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연주회를 가면 그런 경험을 하는 때가 있다. 무대에 등장하여 연주를 하기 직전, 연주자가 잠시 호흡을 고를 때 주위를 침묵시키는 그런 힘… 우리 시대에는 모든 것이 너무나 풍요롭다. 음악도 그 중 하나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풍요의 피해자들이다… 그런 상황에서 좋은 음악은 침묵을 안겨주는 음악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Tatiana Nikolayeva1924-1993가 연주한 J.S. Bach 'the well-tempered clavier book 1, 2에 대한 평 중에서)

인위로 지은 연주회가 이러합니다. 하물며 자연의 소리는 어떠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침묵을 안겨주는 시간은 무엇보다 생명의 호흡을 고르는 아침일 것입니다. 그 아침에 적은 한두 가지 메모를 두서없이 꺼내봅니다.

1. 눈부신 햇살과 상쾌한 가을바람이 온 몸에 스며옵니다. 그 힘이 나를 모시고 받듭니다.

발끝에서 등줄기를 타고 손마디로 또 머리중심으로 오르내리는 하나님의 어루만지심입니다. 배꼽둘레를 휘휘 돌아 오늘 다시 태어나게 하심입니다.

2. 나목이 아프게 걸립니다. 눈에, 마음에, 손끝에서 아련하게. 아침이면 헐벗은 가지 사이 소담한 햇살 드리웁니다. 시린 살갗 따스하게 감싸줍니다.

삶을 유보시킬 것만 같은 계절, 햇살 뿜고 거두시는 이에게도 나목처럼 우리가 아프게 걸릴까요?

3. 번잡한 살림을 차가운 온기로 두루 감싸는 눈이 내립니다.

하나님의 흡음기(sound absorber)입니다. 창 비탈로 미끄러지는 맑은 씻기움에 두 손을 마찰시킵니다. 땅으로 스미고 하늘로 오르는 힘이 과연 이런 것이던가요?

정신은 차갑게 따스해지고 따스하게 맑아집니다. 빛 고운 햇살을 들이마십니다. 겨울아침입니다.

4. 아침은 늘 있으나 아침에 저는 없으니 어찌된 노릇인지요. 밤공기가 찹니다. 아침 햇살을 더 따사롭게 맞기 위한 예비인가요. 요한이 물이었다면 당신은 불입니다.

흘러가는 물이 아니라 떨어지는 불덩이입니다. 시간이되 인간의 시계를 가르는 아찔한 현재입니다.

5. 마음켠에서는 구석의 일로만 처박아두었습니다.

어제 이웃 마을 분을 통해서 말씀을 주셨더군요. 구석의 일이 아니라는 말씀은 모처럼의 자극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어쭙잖은 생활에 파묻혀있었지요.

일이 많았다고 한다면 핑계요, 게을렀다고 한다면 방자가 맞을 겁니다. 구석의 일은 일상에 떨궈질 소박한 파문이 분명합니다.

다른 사소하거나 중요한 일상과는 외떨어진 불연속의 점이 아니라 몸이 거니는 기하학의 공간과 마음의 폭과 넓이에 더해 영혼의 중심에 이르기까지 연결해있는 시작 지점이자 돌아설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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