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4차 산업혁명과 노동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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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4차 산업혁명과 노동의 미래
  • 하종강 교수(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 승인 2023.06.2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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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교수
하종강 교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란
정보통신기술(ICT : 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의 융합으로 이루어 낸 산업 분야의 현격한 변화를 흔히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른다. 2016년 1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 WEF)에서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회장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진 이래 아직까지 학술적으로는 그 개념이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3차 산업혁명’에 대해서조차 아직까지 학문적으로 개념이 정확하게 정의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초기에는 컴퓨터 등 기술적 측면이 강조됐으나 최근에는 그 기술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로 인한 산업구조 고도화나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를 더욱 중요하게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3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학자들 사이에서 계속 진행 중이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는 더욱 ‘오리무중’일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을 3차 산업혁명의 후반부라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4차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AI(인공지능)이나 로봇 기술도 결국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것이어서 3차 산업혁명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기술로 구분하기에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1차, 2차, 3차 산업혁명은 각 100년의 간격이 있었고 변화의 파격성도 매우 컸지만 3차 산업혁명 이후 불과 수 십년 만에 과연 ‘혁명’이라 할 만한 변화가 있는가에 대한 회의적 담론이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는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정보기술(IT : Information Technology) 산업 분야 출신인 안철수 후보를 의식한 다른 후보들이 득표를 위해 경쟁적으로 자신을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가기에 적합한 후보라고 홍보하는 바람에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4차 산업혁명’이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자리 잡은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을 뿐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한국 사회가 4차 산업혁명의 뽕을 맞았다”라고 표현하는 학자도 있다.
 
3차 또는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정의하든지 우리의 주요한 관심사는 그러한 변화 과정이 우리 사회 노사관계 등 노동의 미래에 어떠한 변화를 초래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산업혁명과 노동조합의 변화
1차 산업혁명을 통해 기계가 생산에 투입되면서 특권을 상실하게 된 숙련 노동자들과 소생산 자영업자들이 조직한 것이 바로 인류 최초의 노동조합(trade union)이다. 최초 노동조합의 명칭이 ‘trade union’인 이유는 노동조합의 주요 구성원이었던 소생산 자영업자들에게는 대자본과의 공정한 ‘거래(trade)’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탄생하면서부터 “특권을 상실하는 계층이 그 필요성을 인식한다.”는 성격을 숙명처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 말은 곧 “특권을 상실하는 계층이 계속 발생하는 한 새로운 노동조합 역시 계속 탄생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한다.
 
2차 산업혁명을 통해 전기 동력이 생산 공정에 사용되기 시작했고, 테일러-포드 시스템(Tayler-Ford System) 등이 등장하면서 대규모 공장들이 전 세계의 모든 산업화 지역에 건설되기 시작했다. 밀집해 거주하는 대공장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중심 세력을 형성하게 되고 활발한 노동운동을 통해 중산층 노동자가 형성되면서 사회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전기가 마련됐다. 유럽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에 기반한 진보 정당(노동당·사회당·사민당…)들이 집권하는 계기가 마련되고 그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3차 또는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이제 더 이상 특권층이라고 보기 어려운 고학력 화이트칼라(white-collar)노동자들과 서비스산업 노동자들이 새롭게 노동조합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지식 기반 사회’란 ‘지식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사회’ 곧 ‘지식인이 노동자가 되는 사회’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석사·박사 학위 노동자, 멀티미디어 산업 종사자, 언론 노동자, 금융 노동자, 정보통신기술(ICT : 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 분야 노동자들의 대량 수요가 창출되면서 이들의 특권은 점차 빠른 속도로 소멸되고 있다. 그들은 밤늦게까지 일하며 자신들을 “소모품 같다”고 느끼기 시작했지만 그에 따른 적절한 임금을 받는 경우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문명의 이기들은 노동조건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는 데에 기여한다. 노트북 컴퓨터, 스마트폰 등은 노동자로 하여금 업무를 더욱 많이 처리하면서 휴식은 불가능하게 만든다. ‘화이트칼라’들은 이제 길을 걷거나, 지하철을 타거나, 자가용으로 이동하거나, 심지어 휴가 중에도 회사 일을 해야 한다. 특권을 상실하는 사무·전문·공공 분야의 지식 노동자들이 점차 노동조합의 중심 세력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한국 재벌 계열사 대기업들에 새롭게 결성된 이른바 ‘MZ세대’ 노조들이나 ‘네이버’, ‘카카오’ 등 글로벌 ICT 기업에 노동조합들이 결성되고 있는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4차 산업혁명과 고용 문제
4차 산업혁명이 대량 해고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크지만 미래 사회 고용 상황에 대한 의견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아직 일치되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난다 해도 총 고용량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기술의 진보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실(Executive Office of the President)에서는 향후 10〜20년 동안 최대 47%의 일자리가 인공지능으로 인해 위협받게 되지만, 그만큼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남으로써 실업률은 비슷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인류 역사상 기술 혁신이 일자리를 줄였다는 증거는 아직까지 없다. 실제로 지난 세 차례의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1차 산업혁명에서 생산에 기계가 도입되고, 2차 산업혁명에서 전기 동력이 사용되고, 3차 산업혁명에서 컴퓨터 기술로 인한 자동화 공정이 도입되는 초기에는 일시적으로 실업이 발생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산업혁명이 일자리의 총량을 증가시켰다.
 
지금까지의 산업혁명과 다르게 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의 총량을 줄일 것이라고 성급하게 단정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으로 현재 직업의 ○○%가 향후 ○○년 안에 사라질 것이다.” 등의 주장들은 대부분 노동조합의 고용 안정 요구를 낡은 구시대의 노동운동처럼 몰아가려는 기업의 요구와 이에 부응한 ‘지식장사꾼’들의 적극적 ‘마케팅’의 영향을 받은 거품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노동유연성이 높아져 단기적 일자리(비정규직)와 ‘긱 노동자’라 불리는 플랫폼 노동자가 많아지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청년 세대에게 미래 사회 ‘노동’의 문제는 현실적으로 ‘비정규직 고용’ 또는 ‘플랫폼 노동’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미래 사회에 노동인권 상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확실치 않다고 해도 현재 상황에서는 가능한 한 비정규직 고용의 수를 줄이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이 미래 사회에 바람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사회 ‘노동’에 대한 전망
‘블랙홀의 아버지’로 불리는 천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2015년 영미권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게시판에 남긴 댓글이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처럼 회자됐다. 한 누리꾼이 “급격한 자동화로 대량 실업이 우려되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호킹 박사는 이렇게 답했다.
 
“기계로 창출된 ‘부’가 고르게 나누어지면 모두가 안락한 삶을 즐길 수 있을 것이고, 기계 소유주들이 ‘부’의 재분배에 대항하는 로비에 성공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끔찍하게 가난해질 것입니다.”
 
곧 대량 실업이 발생할지라도 생산성은 높아지므로 창출되는 부의 크기는 훨씬 커질 것이니 그 엄청난 부를 사회 구성원들이 고르게 공유 분배하는 데 성공하면 인류 사회가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직업이 없는 사람들과도 같이 기계가 창출한 부를 고르게 공유 분배하는 것이 바로 ‘기본소득’일 수 있다. 
 
최근 주목을 받는 제러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도 같은 맥락의 주장이다. 기계가 일자리를 대체함으로써 발생하는 대량 실업과 빈익빈 부익부 사회 양극화 현상을 노동 시간을 단축함으로써 일자리를 공유하고, 국가의 공공적 목적과 기업의 영리적 목적이 결합하는 제 3 부문을 확충함으로써 해결하자는 것이 <노동의 종말>에서 제시하는 해결 방안이다.  
 
“사적 영역에 있어서의 대량 고용에 기초한 사회로부터 비 시장 기준에 의한 사회적 생활의 조직화에로의 전환은 현재의 세계관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할 것이다. 대량의 공식적인 노동이 부재한 사회 속애서의 개인의 역할을 재 정의하는 것이 아마도 다가오는 시대의 근본적인 이슈일 것이다.” - 제러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
 
미래 사회를 그린 대부분의 SF 영화들은 그 공유 분배가 실패한 경우를 가정하고 있다. 소수의 특권층이 문명의 혜택을 독점한 채 안락한 삶을 사는 반면 대다수 서민은 매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이버 펑크(cyberpunk)’가 대다수 SF 영화의 바탕이 되는 대립 구도이다. 그러한 영화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항상 저항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그 저항 세력들이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미래 사회에도 지금 노동조합이 하는 역할과 같이 소수가 독점한 ‘부’를 공유 분배하기 위한 진보적 사회운동은 여전히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 가장 중요한 토대는 지금의 노동운동이 될 것이다. 인간이 노예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사회 구성원들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기계가 창출한 노동의 결과물을 공평하게 분배할 것을 요구하는 지금의 노동조합과 같은 활동이 미래 사회에도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다. 노동운동은 사회 발전에 조응하며 계속 변화할 뿐, 미래 사회라고 해서 노동인권의 중요성이 희석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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