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까지 앞선 원고들에서 비정규직의 정의, 비정규직 고용의 문제점, 비정규직의 형태와 종류, 비정규직 고용을 개선해야 하는 이유 등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 원고에서는 비정규직 고용의 노동법적 측면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근로기준법의 정규직 채용 원칙
노동법을 처음 공부한 70년대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선 90년대 중반까지 비정규직 고용은 대부분 불법이었다. 따라서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직장인이 노동부나 법원에 이의를 제기하면 대부분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라는 판단을 받았다.
노동법을 처음 공부한 70년대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선 90년대 중반까지 비정규직 고용은 대부분 불법이었다. 따라서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직장인이 노동부나 법원에 이의를 제기하면 대부분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라는 판단을 받았다.
근로계약은 본래 ‘직접 고용’, ‘정규직’이 원칙이다. 근로기준법이 처음 제정될 때부터 그러한 정신을 담고 있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비정규직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되기 이전에는 비정규직 직장인들을 ‘계약직’이라고 불렀다. 정규직 노동자들도 모두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람들인데, 비정규직만 특별히 ‘계약직’이라고 부른 이유는 평범하지 않은 비정상적 근로계약을 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취직을 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정년퇴임 때까지 일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근로계약이었다. 근로기준법에서 그러한 원칙들을 오래전부터 명시하고 있었는데, 곧 아래와 같은 조항들이다.
근로기준법 제6조 [균등한 처우]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性)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제9조 [중간착취의 배제]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제94조 [규칙의 작성, 변경 절차] ① 사용자는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관하여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다만,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한 회사 안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따로 구분해 차별적 노동조건을 적용하면 근로기준법 제6조 [균등한 처우] 조항의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해 차별적 처우”를 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법 위반이라고 해석했다. 사실상 모든 비정규직 고용이 불법인 셈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기에, 이 조항은 비정규직 고용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매우 강력한 장치였다.
회사에 노동자를 소개해 취업시켰다는 이유로 중간에서 이익을 취하면 근로기준법 제9조 [중간착취의 배제] 조항에 저촉됐다. 이 조항에 따르면, 모든 용역회사나 파견회사는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취업규칙의 변경
‘취업규칙’이란 반드시 그 명칭이 ‘취업규칙’인 규정만 이르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인사노무관리와 관련된 모든 문서를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인사관리규정, 상벌규정, 징계위원회 운영규정, 상여금 지급 규정 등이 모두 취업규칙에 해당한다.
‘취업규칙’이란 반드시 그 명칭이 ‘취업규칙’인 규정만 이르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인사노무관리와 관련된 모든 문서를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인사관리규정, 상벌규정, 징계위원회 운영규정, 상여금 지급 규정 등이 모두 취업규칙에 해당한다.
취업규칙을 개정하는 방향은 크게 두 가지이다. 직장인들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개정할 수도 있고 불이익한 방향으로 개정할 수도 있다. 편의상 전자를 ‘이익 변경’ 후자를 ‘불이익 변경’이라고 칭한다.
취업규칙을 직장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개정할 때는 사용자가 임의로 개정해도 큰 문제가 없다. 예를 들어, 연간 상여금이 기본급의 200%였던 규정을 400%로 개정하는 것은 회사가 직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간단히 의견을 물은 뒤 개정한다고 해도 법률상 효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불이익 변경을 할 때는 당사자 과반수의 동의를 구해야만 법률상 효력이 있다.
따라서 회사가 종전에 없던 비정규직 규정을 임의로 제정해 노동자를 채용하면 근로기준법 제94조 [규칙의 작성·변경 절차] 조항을 위반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정규직 채용을 비정규직 채용으로 전환한다는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동의할 노동자는 사실상 거의 없으므로 기업들은 대부분 직원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비정규직 규정을 만들었다. 따라서 비정규직으로 신규 채용된 직장인이 노동부나 법원에 이의를 제기하는 절차를 밟으면 거의 대부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판단을 받을 수 있었다.
위에 설명한 근로기준법의 세 조항에 따르면 비정규직 고용 자체가 불법행위가 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기업이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했다.
비정규직 고용을 가능하게 한 법 해석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는 시점에 비정규직 고용이 가능하도록 해석하는 판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법률 해석이다.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는 시점에 비정규직 고용이 가능하도록 해석하는 판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법률 해석이다.
“근로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취업규칙의 내용을 불이익하게 변경한 경우라도 취업규칙 내용이 변경된 뒤에 취업한 근로자에게는 적용할 수 있다.”
그 이유를 법률 전문가들은 “기득 이익의 침해라는 효력 배제 사유가 없으므로”라고 설명했다. 기존에 정규직이었던 직장인을 회사가 비정규직 규정을 새로 만들어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당사자가 불이익을 당한 것으로 봐야 하지만, 비정규직 규정이 만들어진 뒤에 취업한 사람은 그 차별적인 노동조건을 사전에 알고 취업한 것이기 때문에 종전의 이익이 침해당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위와 같은 판례 이전에는 회사가 비정규직 규정을 새로 만들 때 기존 직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으면 그 규정 자체가 위법 무효라고 판단했었다.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동의할 노동자는 사실 거의 없다. 다만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기업을 우선 살려야 한다”는 긴박감 때문에 기존의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조치에 하는 수 없이 동의하는 사례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위와 같은 판례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기업들은 이제 마음대로 비정규직 규정을 새로 만들어 신입 사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문이 활짝 열린 셈이다. ‘IMF 외환위기’라는 긴박한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 이와 같은 비정규직 고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것을 제도적으로 정비한 것이 이른바 ‘기간제법’과 ‘파견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설명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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