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법정 저/ 이레 출판/ 2009년 7월 22일 발행 / 정가 9,800원
가을이 깊어 간다. 시나브로 산의 색이 변하고 낮도 짧아져 퇴근 시간 즈음엔 이른 시간 어두워지는 하늘에 살짝 놀라기도 한다.
예로부터 가을비를 ‘떡비’라고 했던가? 추수의 계절이니 비가 오면 넉넉히 집에서 떡을 해먹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가을비가 오면 바람이 따라와 적응되지 않은 추위에 집에서 쉬라는 뜻도 있으리라.
요즘 날씨가 딱 그렇다. 비가 내리더니 갑자기 엄청난 바람과 함께 쌀쌀한 만추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날씨에 주눅 들어 있기 싫어 잠깐 산책을 나갔다가 맑디맑은 하늘과 울긋불긋 곱게 물들어 있는 단풍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완벽한 가을!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는데. 문득 가을을 비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셨던 법정스님의 글이 떠올라 집으로 돌아와 책장 속 법정스님의 책들을 다시 꺼내어 들었다.
가장 유명한 「무소유」를 집어 들었다가 그 옆의 「오두막 편지」로 손을 옮긴다. 오두막 편지는 법정스님이 산골 오두막에서 홀로 지내며 듣고 느꼈던 것들을 편지 쓰듯 써 놓은 글 모음집이다.
아무도 없는 산골 오두막에서 온전히 느끼는 자연들은 이미 외딴곳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스님에게도 많은 것을 새롭게 보게 했던 것 같다.
그중 시계에 대한 글이 있다. 지금은 손목시계, 벽시계, 알람시계, 거기에 휴대 전화까지. 시계들이 지시하는 시간이라는 굴레에 묶여 늘 시간에 쫓기면서 사는 사람들. 법정스님은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을 차용하여 작은 일에 쫓기는 시간보다 더 큰, 살아가는 일과 죽는 일도 시간에 속하다는 얘기와 시간 밖에 있는 무한한 세계로 눈을 돌리면 더 여유를 갖고 현재를 바라볼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한걸음 물러섬의 지혜일 것이다. 그리고 가을엔 맑은 바람이 불어 만물이 생기를 찾는 시기로 차 향기도 새롭다고 한다. 차를 마실 때는 차분한 마음으로 다기를 매만지고 차의 빛깔과 향기를 음미하면서 다실의 분위기도 함께 즐겨야 하며 큰소리로 세상일에 참견하거나 남의 흉을 보는 것은 차에 결례를 범하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특히 남의 얘기를 하는 것은 차뿐만이 아닌 우리의 마음에도 결례를 범하는 행동이리라. 마지막으로 명상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모든 인생의 복잡함을 단순화하고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또, 내 세상에서 자신이 어디쯤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를 권한다. 너나없이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대 사회에서 내 내면에 집중하여 다른 가림 없이 내가 나를 들여다보면 어떨까? 온전히 나를 중심에 두고 집중해 볼 수 있는 시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법정스님의 글로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려면 바깥소리에 팔릴 게 아니라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진정한 스승은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에 깃들여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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