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저/ 나무옆의자 출판/ 2021년 4월 20일 발행/ 정가 14,000원
사람 냄새가 나는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편의점 사장님인 70대의 염 여사, 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50대의 오 여사, 현재의 MZ세대를 대표하는 듯한 20대의 시현, 생계를 위해 밤에 일하는 50대 중반의 성필 씨까지. 이렇게 편의점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 틈으로 염 여사 지갑을 주워준 노숙자 ‘독고’라는 인물이 그 인연을 바탕으로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각 에피소드별로 사연들이 소개되는데, 매일 밤 야외 테이블에서 참참참(참치김밥, 참께라면, 참이슬) 세트로 혼술을 하는 의료기기 영업직 직원 경만의 에피소드에서는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20대의 열정과 체력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떨어지겠지만, 마음마저도 사그라져가는 것 같아 슬프다는 감정을 느꼈다. 나 또한 경만처럼 20대였던 적이 있었고, 40대에 들어서고 나니 직장에서 느끼는 경만의 감정이 무언인지 알 것도 같았다. 20대였다면 몰랐을 감정들이 40대가 되니 감정이 풍부해지고 이해도 또한 높아지는 것 같다. 이런 경만에게 독고는 춥다며 난방기를 가져다주고 술보다는 옥수수수염차를 마시라고 권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경만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경만의 쌍둥이 딸이 편의점에 왔을 때 1+1 제품을 왜 사는지에 대해서도 가볍지 않게 툭 던지듯이 이야기를 해준다. 아직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 힘내라는 의미로 말이다.
사람은 항상 벼랑 끝에 선다면 생각지 못할 힘을 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배우였으나 현재는 절필 직전의 30대 희곡작가인 인경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청파동 편의점 맞은편 집으로 3달간 살기위해 이사를 온다. 하지만 글을 잘 써지지 않는 날이 계속되고 밤에 배가 고파 찾게 된 집 앞 ‘불편한 편의점’에서 도시락 제품이 많지 않아 불편했던 인경은 독고와 말을 나누게 된다. 독고는 내일도 오면 도시락을 따로 빼놓겠다고 이야기를 하자 인경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며칠 뒤에 밤, 편의점에 가게 된 인경은 독고가 따로 숨겨놓은 도시락을 발견하고 사게 된다. 독고는 밤에 편의점에 오는 사람에게 편안함과 말동무가 되어주는 것 같다. 인경은 그 뒤로 독고에게 관심을 가지며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되고 메모하면서 글쓰기를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독고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글을 쓰고 마무리하면서 청파동을 떠나게 된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작가가 혹시 인경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겪은 일을 이렇게 적은 걸까? 진짜 독고가 실존 인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의 중심은 독고라는 인물일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독고는 술을 많이 먹고 알콜성 치매로 인한 것인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본인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다고도 한다. 가장 마지막 에피소드는 그런 독고를 이해하기 위한 장이었다고 생각한다. 독고 또한 한 집의 가장이었으나, 본인과 소통을 못 하는 가족들, 의료사고가 난 성형외과 등 여러 사람들의 문제가 엮인 과거를 통해, 자신이 왜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게 되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지 대한 이야기를 한다. 소설은 그런 독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가 겨울을 지냈던 편의점을 떠나 대구로 가는 길을 마지막으로 끝나게 된다.
가장 불편한 편의점에서 오히려 사람들은 편함을 느끼고, 그들에겐 사람 냄새가 나는 편의점으로 바뀌게 되어가는 과정과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이 여름 너무 더운 날 이 책과 함께 무더위와 폭우가 사라지길 바라면 책장을 덮었다.
“불편한…편의점.”
“자네 오고 그나마 편해졌지. 손님들도, 나도. 근데 다시 불편해질 거 같아.”
“자네 오고 그나마 편해졌지. 손님들도, 나도. 근데 다시 불편해질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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