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근로자’인가, ‘노동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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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근로자’인가, ‘노동자’인가?
  • 하종강 교수(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 승인 2022.11.2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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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교수
하종강 교수
스무 차례도 넘게 찾아가 조합원 교육을 했을 만큼 가깝게 지내던 노동조합이 있었다. 파업이 벌어졌을 때도 찾아갔다. 조합원들은 운동장 가장자리 가로수 그늘 아래 흩어져 앉아 있었고, 강사 혼자 그늘 한 점 없는 한여름 땡볕 아래 서서 두 시간 동안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 뒤 한동안 연락이 없어 이상했는데, 한참 지나서야 까닭을 알았다. 그 노동조합에 다녀온 후배 활동가가 웃으며 사연을 전해준다.
 
“하 선배가 교육할 때 ‘근로자’란 단어를 사용했다면서요. 그래서 인연을 끊었다던데….” 절반쯤은 농담이겠고 인연을 끊은 이유가 어찌 그것 하나뿐이겠냐마는 민주노총 핵심 사업장이라는 자부심이 가득한 ‘민주노조’에 와서 교육을 한다는 강사가 ‘근로자’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두고두고 간부들 입에 오르내렸을 만큼 큰 오점이 된 것은 분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이상한 점이 나는 ‘근로자’란 표현을 사용한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내 짐작으로는 다른 사람의 주장을 인용하거나 노동법 조문을 설명할 때, 원문 그대로 옮기면서 ‘근로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강의를 들은 사람이 앞뒤 맥락을 다 잘라버리고 강사 입에서 ‘근로자’라는 단어가 나왔던 장면만 기억하고 조리돌림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억울하다는 느낌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은 주로 ‘노동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한국노총 소속 노동조합은 예전에는 ‘근로자’란 단어를 주로 사용했지만 요즘은 ‘노동자’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근로자’와 ‘노동자’란 단어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중국에서도 보지 못했던 ‘근로자’
내 수업을 들은 학생들 중에 중국에서 온 유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의 기말시험 답안지를 채점하다가 눈에 번쩍 뜨이는 대목을 발견했다.
 
“중국에서는 16세 이상 노동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라고 한다. 그래서 공무원, 교수, 의사, 환경미화원 등이 다 노동자이다. 이 수업을 들어보니까 한국은 좀 다른 것 같다. 한국에 ‘근로자’라는 호칭도 있는 게 신기하다.”
 
한자의 종주국이라는 중국에 ‘근로자’라는 단어가 없을 리는 없다. 그런데 중국에서 태어난 청년이 20여 년 살아오는 동안 ‘근로자’란 단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가 한국에 와서 그 단어를 처음 보고 신기하게 느꼈을 만큼 중국에서는 ‘근로자’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오래전부터 사용된 ‘근로자’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근로자’에 대해서는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 등 설명이 비교적 간단한 반면 ‘노동자’에 대해서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 법 형식상으로는 자본가와 대등한 입장에서 노동 계약을 맺으며, 경제적으로는 생산 수단을 일절 가지는 일 없이 자기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삼는다” 등으로 좀 더 길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단어에 대한 이러한 설명의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근로자’라는 단어는 조선왕조실록에 23회 나온다. ‘부지런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단어이다. ‘근로’라는 단어는 조선왕조실록에 198회나 등장한다. 삼국사기에도 ‘근로’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반면 ‘노동자’란 단어는 조선왕조실록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곧 ‘근로자’는 예전부터 사용된 단어이고 ‘노동자’는 근대 이후에 만들어졌거나 비로소 일반화된 단어라는 뜻이다.
중세 농경 사회의 노예·노비·농노 등은 모두 ‘근로자’로 표기됐다. 요즘 시대에 일하는 사람들은 노비나 농노는 아니다. 근대 산업사회 이후 새롭게 등장한 피고용자 직장인 곧 임금 생활자 계층을 모든 한자 사용권 나라에서 ‘노동자’로 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부지런하게 일한다’라는 뜻의 ‘근로’와 달리 ‘노동’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고용-피고용 관계에서 임금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지는 행위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노동’이란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노동절’ 기념행사가 1923년에 열렸고 2천 명의 노동자가 모여 노동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근로’란 단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경우는 조선총독부의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또는 이승만 정부의 ‘전시근로동원법’처럼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기 어려운 전시 상황 등에서 노동자성을 희석시키는 용도로 사용된 경우들이 많았다. 사회과학을 공부한 학자나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주로 ‘노동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혐오
한국처럼 ‘노동’이란 단어를 혐오하는 사회는 찾아보기 어렵다. 청소년들에게 ‘노동자’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단어가 연상되느냐고 물어보면 ‘로봇’, ‘노예’, ‘머슴’, ‘힘들다’, ‘거지’ 등의 단어가 생각난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학부모가 자녀와 함께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을 지나갈 때면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저렇게 노동자 된다”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다. 후진국이든 선진국이든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노동’을 뜻하는 ‘working’ 또는 ‘노동자’를 뜻하는 ‘worker’란 단어에 대해 이와 같은 혐오 정서는 없다.
 
모든 한자 사용권 나라들이 달력에 5월 1일을 ‘노동절’로 표기하는데, 대한민국만 유일하게 ‘근로자의 날’이라고 표기한다.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국회의원이 노동부장관을 일부러 “근로부장관”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노동부장관은 “나는 ‘근로부장관’이 아니고 ‘노동부장관’입니다”라고 답했다. 국회의원은 “그런데 왜 ‘노동절’이 아니고 ‘근로자의 날’입니까?”라고 따져 물었다. 30여 년 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이승만 정부 시절에도 그 명칭은 ‘노동절’이었다. 1963년 군사정부 시절에 바뀐 이 명칭을 그 뒤 어떤 정부에서도 다시 바꾸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대 국회에 우리나라 모든 법률의 ‘근로’라는 단어를 ‘노동’으로 바꾸는 법안이 발의되기는 했다. 그러나 회기가 끝날 때까지 상정되지 않아서 자동 폐기됐다. 지난 노동절에는 이낙연 전 총리까지 나서서 “5월 1일은 노동절이 맞습니다. 법을 개정하겠습니다!”라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지만 국회 상임위 문턱을 통과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중 절반 이상은 ‘근로’를 ‘노동’으로 바꿔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도 ‘고용노동부’를 비롯해 ‘중앙노동위원회’, ‘한국노동연구원’ 등 정부 산하기관의 정식 명칭에는 대부분 ‘근로’가 아니라 ‘노동’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정부도 품격이 있는 곳에는 주로 ‘노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시·경기도·인천시·창원시·부산시 의회에서는 모든 조례의 ‘근로’라는 단어를 ‘노동’으로 바꾸는 조례안을 통과시켜 현재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가 비로소 다른 나라들과 비슷하게 정상화되는 과정이지 결코 ‘불순한 변화’로 볼 일은 아니다.
 
2013년 경기도교육청이 ‘민주시민’ 과목을 개설하고 교과서를 개발했을 때, 그 교과서의 노동 단원 집필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저자로 참여한 교사들과 회의를 하면서 ‘학교 급식 아주머니’라는 표현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학생들에게 익숙한 ‘아주머니’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과 ‘노동자’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설전을 벌이다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로 표기하기로 결론을 맺었다. 몇 해 전 보수정당 국회의원이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밥하는 아줌마”라고 표현해서 비난의 대상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교과서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표현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중요한 원인–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노동’에 대한 극도의 부정적 시각이 한국 사회에 형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70년 넘게 ‘분단’이라는 특별한 정치적 상황에 놓여 있는 나라라는 역사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이북에서 집권하고 있는 정당의 명칭이 ‘노(로)동당’이고, 발행하는 신문도 ‘노(로)동신문’이니까 남한 사회에는 ‘노동’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정서를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라고 칭한다.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극대화되어 진보적 주장 일체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거나 빨간색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극단적 반공주의를 가리키는데, 한국 사회는 그러한 ‘레드 콤플렉스’가 가장 심하게 남아 있는 사회이다.
 
우선 ‘노동’ 또는 ‘노동자’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그런데 대한민국은 그렇게 하는 것이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사회이다. 평생이 걸려도 ‘노동’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모두 그러한 사회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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