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수준과 출생률의 부조화
한국은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한 나라다.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 권이다. 전 세계에서 열 번째로 돈이 많은 나라라는 뜻이다. 개인소득은 인구 5천만 이상 나라들 중에서 6위에 올랐다. 한마디로 경제적으로 매우 잘 사는 부자 나라라는 뜻이다.
출생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통계청이 올해 2월 22일 발표한 ‘2022년 출생·사망통계 잠정 결과’와 ‘2022년 12월 인구동향’을 보면 우리나라 2022년 합계출생률은 0.78명으로 전년보다 0.03명 줄어들었다. 한국은 지난 2013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합계출생률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유엔인구기금(UNFPA)과 함께 발간한 ‘2022 세계인구현황보고서’ 한국어판에 따르면 우리나라 합계출생률은 198개국 중 198위를 기록했다. 대한민국보다 출생률 통계가 낮은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는 뜻이다. 반면 북한의 합계출생률은 세계 118위이다.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는 사회
한국 사회에 이러한 기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쟁을 통해 승리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차별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할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대기업·공기업 정규직, 교사·공무원 등이 되면 그나마 안정적 삶이 가능하지만, 그 ‘바늘구멍’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의 삶은 지나치게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2017년 한국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와 일본의 ‘민간급여실태 통계조사’에 기반해 중소기업중앙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에 비해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이 57.2밖에 안 되지만 일본은 83.3이나 된다. 한국 사회에서는 공부를 매우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소득이 두 배가량이나 차이가 나지만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공부하기 싫어하는 자녀를 낳는 것이 크게 두려운 일이 아니다.
교육단체의 통계에 따르면 고등학교 한 반에서 한 명꼴로 나중에 대기업 정규직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한 명이 대부분 자사고·특목고에서 나오기 때문에, 일반 고등학교는 세 학급에서 한 명 정도가 나중에 대기업 정규직이 된다는 것이다.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부모에게 질문해 본다. “여러분의 자녀가 나중에 대기업·공기업 정규직이 될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대부분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그동안 청소년에게 해 온 교육은 “노력해서 그 한 명이 되어라”라는 것뿐이다. 그 한 명이 될 수 없는 평범한 청소년들도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교훈은 찾아보기 어렵다. 자라는 동안 학교에서 배운 모든 교훈들, 지금도 사회 공공시설마다 붙어 있는 명언들은 모두 “노력해서 성공하라!” 것뿐이다. 그러니 책방에서도 자기계발서만 불티나게 팔린다.
고학력·고소득 직종일수록 낮은 출생률
재벌 계열사 대기업에 청년 직장인들은 ‘엠제트(MZ)세대’라고 부른다. 세대 구분론이 놓치는 것 중 하나는 세대 내 계급 갈등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모님이 고시촌 주변에 얻어준 오피스텔에서 온갖 뒷바라지를 받으며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이 있는가 하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온갖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면서 자투리 시간에 짬짬이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청년도 있는데, 세대 구분론은 이러한 같은 세대 내의 계급 갈등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다는 대기업 청년 직장인들을 몇 번 만났다.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는데 상당수가 “결혼 계획은 있지만 출생 계획은 없다”는 것이었다.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어야 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자녀를 자기처럼 대기업 정규직으로 만들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액과외를 받으면서 특목고를 다녔다는 대기업 정규직은 “그 지긋지긋한 고통을 아이에게까지 겪게 할 수는 없어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했다.
요즘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특목고를 준비하면 이미 늦는다”라는 말이 나돈다. 웬만큼 사는 동네에서는 갓난아이 때부터 “집에서는 영어만 쓴다”는 육아원칙으로 자녀들을 키우기도 한다. 그렇게 해도 나중에 대기업 정규직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자녀를 낳아 온갖 고생을 하며 키우느니 그만큼의 노력과 비용으로 자신들이 행복하게 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학력·고소득 직종의 자녀 출생률이 매우 낮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가장 안정적 직장에서 ‘고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생각이 그럴진대, 중소·영세·하청기업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떻게 자녀를 낳을 계획을 세울 수 있겠는가? 신규 공무원이나 교사로 임용돼 사회에 첫발을 딛는 직장인들도 대동소이했다. 자신의 자녀를 자기처럼 공무원·교사 임용시험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시킬 자신은 없다고 했다.
자녀들을 치열한 사교육 경쟁을 거쳐 ‘명문대’에 입학시키고 대기업 정규직으로 키워야 한다는 부담이 자녀 낳기를 두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경쟁에서 승리해 특권을 갖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가르쳐 온 시스템이 대한민국을 경제 규모 10위, 출생률 198위의 국가로 만들었다.
최저출생률을 풀 수 있는 해법
출생률 저하는 경제성장률 저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래 사회의 재앙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한국 사회가 소멸할 수도 있다”고 표현하는 학자도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상황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고학력과 저학력, 사무직과 생산직, 남성과 여성 노동자의 차별이 없어져야만 비로소 해소될 수 있다.
그렇게 평등한 사회가 실제로 있을까? 당연히 있다. 한국 언론사 기자가 네덜란드에 가서 한 중학생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더니 “벽돌공”이라고 답했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벽돌공 일하는 것을 봤는데요, 음악을 하루 종일 크게 들을 수 있더라고요. 나는 음악을 사랑하거든요. 벽돌공이 돼서 평생 음악을 들으며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 꿈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이유는 벽돌공의 수입이 대기업 정규직이나 대학교수와 큰 차이가 없고, 일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회에서도 대기업 정규직이나 대학교수가 고임금 직종에 속하지만 우리처럼 차이가 크지는 않다. 유럽의 대학들에서는 대학교수의 연봉과 대학 경비나 청소 노동자의 연봉이 우리처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학교수를 하다가 대학 경비나 청소 노동자를 하기도 한다.
스웨덴에 유학하고 돌아온 치과의사가 “스웨덴에서는 경력이 10여 년쯤 된 기능직 노동자가 의사보다 월급이 더 많아”라는 말을 해 준 적이 있다. 용접공으로 10여 년 일한 노동자의 소득이 의사와 맞먹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웨덴에서는 청소년이나 학부모들이 기꺼이 배관공·목수·용접공 등의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 치과의사 부부가 살던 동네에는 대학교수 부인과 배관공 남편, 용접공 부인과 의사 남편 부부가 살았다고 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런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러한 얘기를 들으면 한국의 청년들은 “스웨덴 의사들은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요?”라는 어리석은 질문을 한다. 이 질문이 어리석은 이유는, 그러한 사회에서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고생을 각오하고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싶은’ 사람이 의사가 되기 때문이다. 의과대학 입학생을 선발할 때도 우리나라처럼 ‘전교 1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명감이 있는지, 응급환자 때문에 밤잠을 설치면서도 불평하지 않을 수 있는 철학적 토대를 갖췄는지 등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교육문제의 선결 과제인 노동문제
노동자가 정당한 대우를 받는 사회에서는 교육문제도 해결된다. 독일에서는 사교육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독일에 사는 한국인이 자녀 취학통지서를 받았는데 “귀댁의 자녀가 입학 전에 글자를 깨우치면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존재가 됩니다”라는 경고문이 적혀 있더라고 한다. 그 경고문은 그 지역에 한국인 거주자가 많아지며 생긴 것이다. 독일에는 우리나라 같은 학원이 없다. 장애인 학생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학원은 있지만 비장애인 학생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학원은 없다.
사교육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교육 이전에 사교육을 허용하면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자녀들의 학습 능력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고, 그것은 국민의 가장 기본적 권리 중 하나인 교육 받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불평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도 “선행학습은 ‘커닝’보다 더 부도덕하다”라고 가르친다. 프랑스에서는 유치원에서 알파벳이나 구구단을 가르치면 설립 허가를 취소한다.
어느 나라 가정이 더 화목하고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갈까? 한국의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공부하라!”는 다그침만 없어져도 가정의 분위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화목해질 수 있을 것이다. 자녀 사교육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쓰지 않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여유 있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가 정당한 대우를 받는 사회가 돼야 교육문제가 해결된다. 한국의 교육 정책이 난항을 겪고 있는 이유는 정부가 어떤 정책을 제시해도 많은 학부모들의 판단 기준이 “그 정책이 우리 아이가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데 얼마나 유리한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북유럽 많은 나라들처럼 우리의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명문대 나온 사람 못지않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지금처럼 쫓기듯 살아가지 않을 수 있다.
지금처럼 대기업 정규직은 젊었을 때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누리는 ‘당연한 특권’이고, 비정규직은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받는 ‘마땅한 형벌’처럼 여기도록 가르치는 사회에서 출생률 저하 문제는 개선될 수 없다. 자녀가 앞으로 어떤 직종에서 일하든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회라면, 자녀 낳기도 두렵지 않게 될 것이다. 출생률 문제 역시 노동자가 정당한 대우를 받는 사회가 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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