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날치기 통과의 무효화
1996년 12월 26일 새벽 국회에서 단 7분 만에 날치기 통과된 노동법 개정안이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저항에 부딪히자 김영상 대통령은 1997년 1월 21일, 야당 대표인 김대중, 김종필과 함께 영수회담을 한 뒤 노동법 개정을 무효화하고 같은 해 3월 10일, 여야가 합의한 새로운 노동법 개정안을 만들게 된다.
이러한 소동 이후 국회에서는 공휴일에 본회의를 열 수 없게 되었다. 공휴일에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청구한 권한쟁의심판이 인용되었기 때문이다(96헌라2). 그 뒤 21대 국회 전반기 마지막 본회의 마감 기한인 2022년 5월 29일, 본회의가 일요일에 잡혀 있었는데 회의를 열기 위해 공휴일 본회의 개의에 관한 안건이 통과된 뒤에야 본회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
정리해고의 정당성 요건들
잠시 ‘징계해고’의 정당성 요건에 관한 기억을 되살려 보자. 지금도 근로기준법에는 해고 등 징계에 관하여는 “정당한 사유 없이 할 수 없다”라고 간단히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 ‘정당한 사유’라는 단 한 줄에 근거해 법원의 판사들이 실제로 징계해고 사건을 판단할 때는 ①해고 절차, ②해고 사유, ③징계권 남용 등 세 가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지난번 징계해고에 관한 원고에서 설명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근로기준법에 정리해고 조항이 규정되지 않았을 때 법원의 판사들은 정리해고 사건에 대해서 어떤 판단 기준을 갖고 있었을까? 대략 네 가지 정도였다.
첫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을 것.(긴박한 경영상 필요성)
둘째, 회사는 가능한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할 것.(해고 회피 노력)
셋째, 공정한 해고 기준에 의해 대상자를 선정할 것.(공정한 기준)
넷째, 노동자들과 사전에 성실하게 협의할 것.(성실한 협의)
둘째, 회사는 가능한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할 것.(해고 회피 노력)
셋째, 공정한 해고 기준에 의해 대상자를 선정할 것.(공정한 기준)
넷째, 노동자들과 사전에 성실하게 협의할 것.(성실한 협의)
그러니까, 그동안 법원은 근로기준법에 정리해고 조항이 규정되지 않았을 때부터 회사는 노동자들을 감원할 때 위의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야만 한다는 기준을 적용해 왔던 것이다.
재개정된 근로기준법의 정리해고 조항
날치기 통과됐던 근로기준법에는 그동안 정리해고에 대한 판결 중에서 노동자에게 가장 불리한 해석이었던 영업 성적의 악화, 생산성의 향상, 경쟁력의 회복 내지 증강, 작업 형태의 변경, 신기술의 도입에 따른 구조적 변화 등의 경우에 모두 정리해고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거의 모든 직장인을 ‘파리 목숨’으로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 내용이었고 따라서 “해방 이후 최대”라고 표현될 만큼 광범위한 공분과 저항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김영삼 대통령이 날치기 통과됐던 노동법을 무효화하고 1997년 3월 10일에 여야가 합의해 새로 개정한 근로기준법에는 정리해고에 관한 조항이 어떻게 명시됐을까? 그동안 법원 내부에서 판사들이 정리해고 사건을 판단할 때 적용해 왔던 네 가지 기준 곧 ①긴박한 경영상 필요성, ②해고 회피 노력, ③공정한 기준, ④성실한 기준 등이다. 법조문 내용의 중요한 부분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제24조(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 ①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하여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 경영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사업의 양도·인수·합병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본다.
② 사용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여야 하며,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의 기준을 정하고 이에 따라 그 대상자를 선정하여야 한다. 이 경우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 사용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방법과 해고의 기준 등에 관하여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근로자대표와 해고 일자 50일 전까지 통보하고 성실하게 협의하여야 한다.
② 사용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여야 하며,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의 기준을 정하고 이에 따라 그 대상자를 선정하여야 한다. 이 경우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 사용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방법과 해고의 기준 등에 관하여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근로자대표와 해고 일자 50일 전까지 통보하고 성실하게 협의하여야 한다.
결과적으로 정리해고에 관한 조항이 법에 없을 때부터 법원의 판사들이 적용해 왔던 기준이 그대로 근로기준법으로 자리를 옮긴 것뿐이다. 그러니까, 법을 좀 아는 사람이 들여다보기에는 정리해고에 관한 규정이 법에 신설됐다고는 하지만, 법리상으로는 신설되지 아니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근로기준법에 정리해고에 관한 조항이 없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신설된 뒤에도 법원의 판사들은 어차피 종정과 같이 네 가지 기준에 의해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해고 조항 신설을 둘러싼 심리전
더욱 이상한 일은 같은 법 부칙에서 <경영상 이유에 의한 고용 조정> 곧 정리해고 조항을 공포일로부터 2년이 경과한 뒤에나 시행한다고 단서를 붙인 것이다. 있으나 마나 한 규정을 만들어 놓고 그 시행을 2년이나 유보한다는 것이다. 그랬다가 김영삼 문민정부 말기에 뜻하지 않게 ‘IMF 외한위기’ 사태가 터진 뒤 들어선 김대중 국민의 정부에서 그 시행 시기를 앞당기게 된다. 근로기준법의 정리해고 조항이 김대중 국민의 정부에서 신설됐다고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러니까 법률 전문가들이 보기에 다음과 같은 생각들은 모두 잘못된 오해들이다.
“근로기준법에 정리해고제가 신설되기 이전에는 우리 사회에 정리해고가 없었다.”, “근로기준법에 정리해고제가 신설되었으니 이제는 기업이 노동자를 좀 더 쉽게 감원할 수 있게 되었다.”, “근로기준법에 정리해고제가 신설되기는 했으나 그 시행이 2년 동안 유보되었으므로 그 2년 동안은 기업이 노동자를 감원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어디까지나 이론상 그렇다는 것뿐이지 실제로는 많은 기업이 정리해고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피고용자 직장인들은 언제 정리해고를 당할지 몰라 두려워 떠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근로기준법에 정리해고 조항을 신설하는 문제를 놓고 대한민국의 노·사·정은 한바탕 거대한 심리전을 치른 셈이고 그 상황은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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