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직장 내 괴롭힘, ‘직폭’의 관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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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직장 내 괴롭힘, ‘직폭’의 관점으로!
  • 김영남 교수(경복대학교 치위생과)
  • 승인 2024.04.2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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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교수
김영남 교수
직장에서 일어나는 갑질을 금지하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도 벌써 4년이 되어간다. 직장 내 괴롭힘은 사용자나 근로자가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뜻한다. 쉽게 말해 직장생활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술자리 강요, 성희롱, 성추행, 지속적인 폭언과 욕설, 사적인 심부름, 집단 따돌림, 의도적 무시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여전히 폭력적인 조직문화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작년 3월 동아일보는 한 시민단체 조사를 인용하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노골적 폭언 등은 줄었지만, 업무나 식사 배제 등 교묘한 정서적 학대는 늘었다”라고 보도했다. 같은 시기 매일경제는 “학폭 벗어나니 ‘직폭’…출근이 두려운 직장인들”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의 심각성에 대해 지적했다. ‘학교폭력(이하 학폭)’이 수많은 피해 청소년의 정신을 파괴하듯이, ‘직장폭력(이하 직폭)’ 역시 성인 직장인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직장 내 괴롭힘은 보건의료계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하여 기간제 치과위생사에게 폭언과 퇴사를 종용한 치과의사에게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또한 피해자 보호 의무가 있음에도 미흡하게 대처한 병원 측의 배상 책임도 함께 인정했다. 지난 2020년 치과위생사의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연구에 따르면, 임상에 근무하는 치과위생사의 60% 이상이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고, 근속연수로는 3년 이하, 가해 대상은 스텝(동료, 선배)이나 치과의사 순이었으며, 괴롭힘 방식은 주로 언어적 폭력이나 부적절한 업무지시 등으로 나타났다. 또한 모 국회의원이 제시한 자료에서는 지난 5년간(2017~2021) 산업재해로 인정된 자살 건수는 473건에 달하며, 한 해 평균 100명에 가까운 근로자가 직장 내 괴롭힘 등의 사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괴롭힘은 감정적인 스트레스와 심리적인 고통을 초래하여 근로자의 정서와 건강을 해치고 업무 효율성까지 떨어뜨린다. 그뿐만 아니라 자존감 하락과 직업 만족도를 낮추어 이직을 고려하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매일 출근하는 일터가 지옥처럼 느껴진다면 응대하는 고객과 환자들에게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창의와 혁신의 생산적인 성과를 내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고,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마저 훼손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은 우리 사회가 바로잡아야 할 잘못된 조직문화임을 인지해야 한다. 조직 내 위계질서에 따른 장벽을 허물고 소통하면서 자율적으로 직장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수직적 서열에 의한 후배, 부하라는 이유로 비방과 폭언을 퍼붓는 비인격적 ‘갑질 문화’에서 벗어나 공동의 성과를 이루어 내는 팀원으로서 협력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 ‘사람 존중’ 문화가 정착될 때 오래 근무하는 일터도 가능할 것이다. 
 
공동체 속에서 우리 각자의 삶은 결코 홀로 독립될 수 없다. 자본의 논리가 팽배한 이 시대의 성과주의적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한배를 타고 역량과 에너지를 소진하며 일하는 근로자이며 팀원이다. 그럼에도 직장 내 균열을 만드는 사람이나 부당한 조직문화를 목도하고도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회피와 방관을 허락한다면, 이 일은 결코 남의 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방관은 또 다른 가해와 다름없다. 그러나 외면하지 않고 곁에 있는 누군가의 어려움을 구하는 일은 잠재적인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나 자신을 구하는 일이 된다. 이제는 우리가, 그리고 사회가 함께 인식하고 나설 때이다. 
 
협회 차원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예방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인식을 높이고, 관련 지침을 개발하여 회원들에게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치과위생사들은 자신의 권리를 알고 보호해야 한다. 괴롭힘에 대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전략을 갖추고, 동료들과 소통하고 서로 연대하고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한 인기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았던 여배우가 큰 주목을 받았었다. 교묘한 학폭을 통해 여주인공을 가스라이팅하는 조연 역할이었는데, 그 역할을 잘 소화했다는 평을 받아서 수년간의 무명생활에서 벗어나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얼마 후 실제 학폭 이력이 밝혀지면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극을 맞이했다. 이제 우리 사회는 학폭에 대해서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는 합의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학폭’이 장소를 옮겨 일터로 가면 ‘직폭’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단순히 직장생활의 어려움 정도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직장폭력의 문제로 인식하고 바라본다면, 학폭과 같이 직폭 근절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인식과 공감대가 형성되고 올바른 직장문화가 정착되면, 직장 내 괴롭힘 문제의 예방과 근절은 앞당겨질 수 있다. ‘괴롭힘은 약자의 선택이 아니라 가해자의 결정’이다. 직장 내에서 문제의 상황을 외면하거나 방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가해자는 더 이상 설 곳이 없게 된다. 오늘, ‘원 팀’으로 함께하는 동료의 손을 따듯하게 한번 잡아 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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