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비정규직 고용계약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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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비정규직 고용계약의 문제점
  • 하종강 교수(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 승인 2024.05.2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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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교수
비정규직의 정의
지금의 비정규직 직장인들을 예전에는 보통 ‘계약직’이라고 불렀다. “저 사람 계약직이야.” 그렇게 말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뜻이었다. 참 이상한 것은 정규직 노동자들도 모두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람들인데, 왜 비정규직만 특별히 ‘계약직’이라고 부른 것일까?
 
정규직은 평범하고 정상적인 보통의 근로계약을 한 사람들이고 비정규직은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근로계약을 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줄여서 ‘계약직’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러니까 비정규직을 ‘계약직’이라고 표현할 때는 그 앞에 무슨 단어가 생략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기간이 정해져 있는 매우 이상하고 특별한 비정상적 근로계약을 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직장에 취업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자신이 원할 때까지 근무하는 것이 오래 전부터 관행으로 이어져 온 ‘정상적’ 근로계약이었다. 교사나 공무원처럼 일단 취직을 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정년퇴임 때까지 일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근로계약이었다.
 
그런데 비정규직은 1개월, 3개월, 6개월, 1년, 2년 등 “기간이 정해져 있는 근로계약”을 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기간이 끝나면 아무리 더 일하고 싶어도 계속 일할 수 있을 지 여부를 회사의 결정에 일방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다. 근로계약 기간이 끝나는 날 경영자가 “내일부터 다시 나오세요”라고 말하면 계속 일할 수 있지만, 아무 말도 해 주지 않거나 “근로계약 기간이 끝났으니 내일부터는 출근할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하면 그날로 직장을 잃게 될 수밖에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최대한 간단히 정리하면 “정년퇴직이 보장되면 정규직, 그렇지 않으면 비정규직”이라고 할 수 있다.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비정규직 직장인이 계약기간이 끝났을 때 재계약을 하려면 평소 경영진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과도한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업무수행 능력만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미움을 사는 경우에도 계약 연장이 거의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피고용자 입장에서는 비정규직 근로계약을 흔히 ‘노예계약’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IMF 외환위기 이전 시기만 해도 직장에 취업할 때는 대부분 정규직 근로계약이 일반적 원칙이었다. 비정규직 근로계약은 매우 드물게 제한적인 직종에만 허용되어 왔다. 비정규직 근로계약은 피고용자에게 매우 불리한 노동조건을 강제하기 때문에 너무 많아지거나 장기 지속되면 비정규직 당사자는 물론 사회 전체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직장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비정규직이 얼마나 비인간적 고용계약인지 쉽게 알 수 있다.
 
“화장실 한 번 마음대로 못 가면서 10년 동안 일했어요. 어제가 아버님 제삿날인데 못 가 뵈었어요. 휴가 신청했다가 내년에 계약 연장이 안 될까 봐요. 작년에 휴가 썼던 사람들은 다 재계약이 안 됐거든요.” - 제조업체 파견 노동자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면서 정규직 시험을 몇 년 동안이나 준비했습니다. 매년 몇 명씩 정규직으로 승진시키는 제도가 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그 제도가 없어져 버렸다는 거예요. 이제 저는 어떤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하나요?” - 공공기관 계약직 사무원
 
“휴일, 명절도 없이 20년 일하며 최저임금 겨우 받았습니다. 야근 끝나면 택시비가 없어서 집에도 못 간 채 신문지 깔고 회사에서 잘 때도 있었고, 회사 일 때문에 어머니 임종도 못 지켜 드렸습니다.” - 전산망 관리회사 비정규직 노동자
 
“파견직에게는 경조사 휴가비도 50%만 지급됐어요. 휴가를 내도 해고되고, 아파서 조퇴를 신청하면 ‘집에 가서 영원히 쉬라’고 했습니다.” - 전자회사 파견 노동자
 
“사장뿐 아니라 사장님 부인 수발까지 들었어요. 일이 끝나면 사장 집 텃밭을 가꿨어요.” - 고속도로 톨게이트 수납원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을 견디며 일해야 했을까? 계약기간이 끝난 뒤 재계약이 되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근로계약을 ‘노예계약’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렇듯 비정규직은 피고용자 직장인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회사에 무언가 요구할 수 있는 권리 자체를 봉쇄함으로써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제하는 불합리한 고용계약이다.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 실태
2004년 2월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정부와 연례정책협의를 가진 뒤 <한국 경제 주요 현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보고서를 통해 “신규 고용의 70%가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지적하면서 “이 같은 노동시장의 이중적 구조가 한국 경제의 저해 요소가 됐고, 향후 발전도 제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철저하게 자본 증식 논리에 따라 이윤을 추구하는 국제금융자본이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인간적 처지를 걱정해 그와 같은 인도주의적 차원의 요구를 했을 리는 없다. 이미 오래 전부터 국제금융자본이 한국에 투자하면서 이윤 창출에 장애가 될까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한국의 비정규직 규모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가장 높고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이다.
 
원로 경제학자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는 2015년 12월에 쓴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비정규직이 한국만큼 많은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한국의 비정규직은 노동자의 50%로서 세계 1위다. 유럽에서는 스페인이 30%를 넘는 것으로 악명 높다. 다른 나라들은 이 비율이 10~20%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비정규직은 주로 스스로 원해서 하는 파트타임 노동자들이니 비정규직이라도 별로 불만이 없다. 반대로 한국의 비정규직은 본인이 원하지 않는 타의의 비정규직으로서 이들에게 정규직은 꿈속의 소원이다. 게다가 한국 비정규직의 월급은 정규직의 60%밖에 안 되는데, 이렇게 큰 차별을 받는 나라도 별로 없다.”
 
문제는 이러한 비정규직 고용계약이 기업이 단기적으로 노동비용을 절약하는 데에 도움이 될 뿐 장기적으로 기업경쟁력이나 국가 경제에 결코 유익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고용계약이 개선돼야 하는 이유는 비정규직 당사자의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고용계약이 기업의 경쟁력이나 국가 경제 등 사회 전체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설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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