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배움이 많았던 필리핀 의료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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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배움이 많았던 필리핀 의료봉사
  • 이재희 치과위생사(춘천예치과)
  • 승인 2024.05.30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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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위협보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현재 춘천예치과 의료봉사 동아리 ‘나비채’에서 활동하고 있는 치과위생사 이재희라고 합니다. 의료봉사 동아리를 통해서 진행했던 필리핀 현지 의료봉사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필리핀 의료봉사 현장에서의 이재희 치과위생사
필리핀으로 떠나기 전 해외 의료봉사를 하는 건 처음이라 기대도 되었지만 걱정되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가장 큰 걱정은 장비와 시설이 한국보다는 열악한 필리핀 환경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불안대로 진료 첫날부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우선 체어에 별도의 라이트가 없어서 원장님은 따로 헤드 렌턴을 준비해 머리에 끼고 진료를 하셔야만 했습니다. 근데 더 큰 문제는 배터리가 금방 방전되어 자주 충전을 해야 했는데 충전하는 동안엔 불빛이 약한 손전등에 의지해 진료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체어가 너무 낮아 어시스트를 할 땐 허리를 매우 낮춰야 했는데 따로 의자를 둘 수 있는 공간이 안되어 몇시간 동안 허리를 90도로 낮춘 채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이틀동안 저희의 예상보다 많은 120명 정도의 진료를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어시스트 과정에서 허리도 아프고 열악한 진료환경으로 어려움을 겪으니 절로 한국에 있는 병원 진료실이 그리워지기도 했습니다.
 
필리핀 현지 의료봉사를 진행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건 어린 친구들의 구강상태였습니다. 대부분의 10대 청소년들이 대구치가 1~2개씩은 없었고, 심각한 치주염과 우식증으로 발치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하악 전치부 설면에 치석이 심한 상태가 대부분이었고, 이를 제거하고 나면 치근이 다 드러날 정도로 잇몸이 내려앉아 있는 상태의 청소년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현지에서 직접 제작한 칫솔질 교육 자료
첫날 이러한 상황을 직면한 저를 비롯한 치과위생사 선생님들이 진료와 더불어 구강보건을 위한 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둘째날부터는 환자 대기실에 올바른 칫솔질 방법을 그림과 간단한 영어로 스케치북에 그려 전시해 놓았습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은 환자를 봐야 해서 직접 TBI 교육을 하진 못해 아쉬웠지만 이렇게라도 올바른 칫솔질을 비롯한 구강보건교육이 되길 바랐습니다.
 
치과위생사로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면 바로 ‘소통’이었습니다. 평소 환자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환자들이 치과치료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에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아~’라는 말만 외칠 뿐 어디가 아픈지, 왜 이렇게 됐는지, 몇 살인지 등 평소 당연히 습관처럼 했던 스몰 토킹을 하기 어려워 답답한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치과위생사로서 환자와 나눌 수 있는 영어를 미리 배워야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언어적, 문화적 차이가 주는 재밌는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필리핀 환자들이 체어에 앉을 때마다 ‘파스타?’를 연신 반복해서 말했는데, 나중에 무슨 뜻인가 찾아보니 영어 ‘paste – 붙이다’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거기서 함께 봉사했던 현지 선교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흔히 충치치료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진료 두 번째 날, 유독 ‘파스타 치료’가 많았던 하루였습니다. 얼마나 많았는지 ‘이제 당분간 파스타는 먹지 못하겠다’라고 농담을 할 정도였죠. 그런데 일 끝나고 저녁밥을 먹으러 갔는데 우연인지 운명인지 우습게도 그날 메뉴가 ‘토마토 파스타’였습니다. 못 먹을 것 같다고 말했던 저희의 걱정과 달리 무척 배가 고팠기 때문에 한 가닥도 남기지 않고 잘 먹었답니다. 
 
비록 이틀간의 짧은 해외 봉사였기에 아쉬웠던 부분이 많았지만, 그만큼 많은 반성과 배움이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필리핀 현지 치과진료의 열악함과 구강보건교육의 미숙으로 어릴 때부터 대구치를 잃어야 하는 필리핀 아이들을 보면서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급한 치료만 해주는 의료봉사가 아닌 치과위생사로서 스스로 구강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강보건교육 의료봉사를 함께하겠다는 목표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나비채’와 같은 꾸준한 봉사활동을 통해 치과위생사로서 다양하게 활동하는 의료봉사자가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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