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비정규직 고용을 개선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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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비정규직 고용을 개선해야 하는 이유
  • 하종강 교수(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 승인 2024.08.29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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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교수
하종강 교수
지나치게 많은 비정규직 고용
지난 원고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들 중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고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여서 국제통화기금(IMF)조차 일찍이 2004년 <한국 경제 주요 현안 보고서>를 통해 “신규 고용의 70%가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지적하면서 “이 같은 노동시장의 이중적 구조가 한국 경제의 저해 요소가 됐고, 향후 발전도 제약할 것”이라고 지적하기에 이르렀다. 10명이 취업하면 그 중 7명이 비정규직이라는 뜻인데 이와 같은 현상이 비정규직 당사자에게만 불이익한 것이 아니라 경제 성장의 저해요소가 됐다는 뜻이다.
 
다시 한번 상기하자면, 원로 경제학자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는 2015년 12월에 쓴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비정규직이 한국만큼 많은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한국의 비정규직은 노동자의 50%로서 세계 1위다. 유럽에서는 스페인이 30%를 넘는 것으로 악명 높다. 다른 나라들은 이 비율이 10~20%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비정규직은 주로 스스로 원해서 하는 파트타임 노동자들이니 비정규직이라도 별로 불만이 없다. 반대로 한국의 비정규직은 본인이 원하지 않는 타의의 비정규직으로서 이들에게 정규직은 꿈속의 소원이다. 게다가 한국 비정규직의 월급은 정규직의 60%밖에 안 되는데, 이렇게 큰 차별을 받는 나라도 별로 없다.”
 
비정규직 고용을 개선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현재 한국 사회에 비정규직이 많아도 너무 많은 상황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 원상회복
노동문제에 대해 처음 공부하기 시작한 70년대 중반 무렵에는 ‘비정규직’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었다. 임시직, 계약직, 상용직 등의 용어가 사용됐고 인원도 별로 많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 비정규직 고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결정적 계기 중 하나는 1997년 경에 겪었던 이른바 ‘IMF 외환위기’ 사태와 2007~2008년의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는 광경을 목도하면서 “어떻게든 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정서가 모든 정책에 반영됐다. 노동자들의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감수하면서라도 기업을 살리자는 취지로 그때까지 대부분 불법이었던 비정규직 고용을 합법화한 것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데도 한국의 고용 유연성이 지나치게 낮고 경직화돼 있다는 내용들이 언론을 거의 도배하다시피 하면서 지금 우리가 ‘비정규직법’이라고 부르는 기간제법과 파견법 등이 도입됐다. 비정규직법이란 근로기준법상으로는 엄밀히 불법인 비정규직 고용을 합법화시켜주는 법 제도들이다.
 
우리 사회가 ‘IMF 외환위기’를 효율적으로 극복했고 그 이후의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극복했다”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잘 넘겼으니 이제는 대다수 직장인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비정규직 고용을 정규직화함으로써 본래의 형태로 돌아가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대표적으로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2008년까지 한국도로공사에 직접 고용된 계약직 직원들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공기업 선진화’ 정책에 따라 – 사실은 ‘공기업 재벌기업화 정책’이라는 주장도 있다. 당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 노동단체가 몇 달 동안이나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았다면 고속도로, 전기, 가스, 수도 사업 등은 지금 민영화돼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는 주장이다. - 하청회사 소속 간접고용으로 전환된 것이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의 업무가 한국도로공사와 별도로 독립돼 진행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도로공사가 이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도 있었다.
 
비정규직을 가능한 한 정규직화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단한 특혜를 입는다고 볼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 고용과 국가 경제
2012년 10월 IMF는 <한국 경제의 지속·포용성장 보고서(Sustainable and Inclusive Growth)>를 통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없어지면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10년간 연 평균 1%가량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기도 했다. 당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1,300조원 안팎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노동시장 개혁’만으로 매년 13조~20조원 이상의 부가가치가 새롭게 창출되는 셈이다.
 
같은 보고서에서 IMF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져 있는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가 해소되면 자중손실(自重損失 : Deadweight loss) - 적재 중량 한도가 있는 도로에서는 차가 무거울수록 실을 수 있는 짐이 줄어드는 것처럼, 독점이나 정부 개입 등으로 시장에서 생산·유통되는 부가가치가 잠재 수준을 밑돌아 발생하는 손실, 사중손실(死重損失 : deadweight loss, excess burden 또는 allocative inefficiency)이라고도 한다. 원인으로는 독점가격, 외부효과, 세금이나 보조금 그리고 가격상한제, 가격하한제 등이 있다. 발견자의 이름을 따 ‘하버거의 삼각형(Harberger's Triangl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감소로 인한 노동 공급 증가로 향후 10년간 연 평균 1.1%의 성장률 상승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취업하려는 노동자와 마땅한 인력을 구하고 싶어하는 기업의 요구가 맞아떨어져 노동력 손실이 적어지고,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들이 소비를 늘리지 않아 경제 성장의 기반이 파괴되는 현상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인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는 것이 경제 성장에 기여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규명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또한 IMF는 한국이 양극화와 인구 고령화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세 번째로 낮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62%)을 높여야 하는데 비정규직 차별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 통계상으로도 여성 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42%로, 남성(28%)보다 배 가까이 높은 상황이다.
 
비정규직을 가능한 한 정규직화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국가경제에도 유익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과 기업경쟁력
 기업이 단기적으로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것을 계속 용인하면 기업들은 경영 효율을 높이기 위한 다른 방안들을 도외시한 채 노동비용을 줄이는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게 되고, 따라서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국가 경제에도 해로운 영향을 끼치게 된다. 노동자들에게 높은 임금을 지불하면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키우는 기업이 나라 경제에도 유익한 선진기업이다.
 
한국 경제는 이미 저임금 경쟁력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 부가가치 창출 능력이 없어 저임금 경쟁력으로 유지할 수밖에 없는 기업, 곧 다른 경쟁력이 없어서 노동자에게 적은 임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겨우 수익을 내는 기업들은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것이 오히려 시장경제 원리에 부합한다. 실제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제도적으로 금지하고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제도를 엄격하게 실시하는 나라에서는 경제성장률이 안정적으로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비정규직을 고용해야만 중국과 가격 경쟁을 할 수 있다”거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인건비 때문에 도산할 수밖에 없다”는 경영자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다가는 나라 경제가 수렁에 빠져들 수 있다. 한 예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이 한국 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데 이러한 회사들은 결코 저임금 사업장이 아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하는 네 번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비정규직 고용을 가능한 한 정규직화해야 하는 이유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유익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비정규직을 가능한 한 정규직화하는 것이 나에게, 당신에게, 그리고 사회 전체에 유익한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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