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나는 자원활동가 치과위생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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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나는 자원활동가 치과위생사입니다.”
  • 석혜주 치과위생사
  • 승인 2022.11.18 1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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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증장애인 치과에서 12년째 자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나의 활동 시작은 대학 시절부터였다. 당시 과 동아리 하나를 필수로 선택해야 했는데, 내가 선택한 곳이 마침 봉사동아리였다.
 
봉사동아리였지만, 특별히 정해진 활동지가 있거나 일정이 짜여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봉사동아리 소속이라는 것을 잊고 지낼 때쯤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부산에 있는 한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치과 진료실에서 학생 활동가를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활동 조건은 월 1회, 일요일 한나절이고 8명을 모집한다고 했는데 동아리 회원 수에 비해 경쟁률이 치열하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그런 선한 마음보다는 가까운 미래에 어차피 치과에서 일하게 될 것을 미리 경험해본다는 생각이었다. 다소 불순했지만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활동 첫날, 복지관에 자리 잡은 좁은 치과 진료실로 안내받았다. 열악한 진료 환경과 아는 것 하나 없는 나 같은 학생을 포함한 치과 진료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한 사람,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서 치과에 가지 못한 사람, 스스로 칫솔을 잡는 것조차 어려워 매일 해야 하는 칫솔질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장애인에게는 일상적인 행위가 장애인에게는 힘겨운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당시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활동 첫날,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은 것이 달랐다. 치과 기구와 재료들의 이름과 위치를 파악할 틈도 없이 진료는 시작되었고, 내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진료는 끝나버렸다. 제대로 한 게 없는 것 같아 몹시 당혹해하고 있을 때 휠체어를 탄 분이 내게 다가오셨다.
 
“어린 학생이 귀한 주말에 나와서 고생하네. 고마워요”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나에게 정말 큰 위로가 되어준 따듯한 인사였다. 너무나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한 내가 받아도 되는 인사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고 고마웠다. 이날 내가 느꼈던 소중한 마음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이후 복지관 치과 진료 활동은 처음 약속했던 기간을 지켜 한 번도 빠지지 않았고, 활동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한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 치과위생사가 되고 난 뒤, 당시 진료실에서 함께 활동했던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이제는 복지관이 아닌 중증장애인치과의원을 정식으로 열게 되었고 그곳에서도 치과위생사 활동가가 절실하니 꼭 와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대학 시절 복지관 치과 진료실에서 시작된 인연은 2010년 중증장애인치과 진료활동으로 다시 이어졌고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다. 사실 당시 나는 이렇게 오래 활동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하는 활동이 나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했을 일이니까 할 수 있을 때까지만 하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부산 생활을 접고 본가가 있는 삼천포로 돌아가야 했다. 부산까지는 가기엔 거리가 먼 곳이라 새벽에 일어나야만 첫차를 탈 수 있었고 이동에만 왕복 네 시간이 걸리기에, 일요일 온종일을 장애인치과 활동에 매여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자원 활동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했을 일이니까 할 수 있을 때까지만 하자.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말이다.
 
그동안 힘들지 않았냐고 누군가 질문했을 때 나는 솔직하게 힘들다고 답을 한다. 다만 육체적인 힘듦과는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뇌병변 중증장애인의 경우 불수의근(내 의지와 관계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근육)인 분도 자주 만나게 되는데, 이런 경우 치과 진료 체어가 아닌 이분의 휠체어에서 바로 스케일링을 시행할 때도 있다. 그러면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스툴에 앉는 안정된 자세보다는 서야만 스케일링을 시도할 수 있다.
 
목 근육이 덜 발달한 분은 조금의 물도 참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머리를 뒤로 젖혀 주세요라는 말은 함부로 할 수가 없다. 나는 최대한 발뒤꿈치를 세우고 최대한의 시야를 확보해야만 한다. 거의 내 머리를 입속으로 넣을 듯한 자세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혹여 갑자기 움직여서 내가 잡고 있는 날카로운 기구가 이분에게 흉기가 될까 봐 겁이 나고 더 긴장하게 된다. 운이 좋게 아직 내가 다치게 한 분은 없지만, 이런 긴장감은 늘 가지게 된다. 그런 점이 힘들다.
 
한 달에 한 번이지만, 나로 인해 어떤 분은 건강한 잇몸을 갖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내가 하고 있는 이 활동이 뿌듯해지고 마음도 따듯해진다. 과거에 나는 지금의 활동이 봉사라고 생각했다. 나의 시간과 나의 노동을 희생해서라도 누군가 좀 더 건강해진다면 그것으로 만족했지만, 그것은 나에게 기만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지금의 활동이 더없이 즐겁고 행복하다. 직장인의 소중한 일요일 새벽잠을 소진하고, 왕복 네 시간을 달려와서, 어떤 날은 잔뜩 긴장한 채 활동하면 어깨까지 뻐근할 정도지만, 이 활동이 나에게 기분 좋음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과정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것이다. 봉사활동이 아닌 자원활동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는 내가 너무 좋다.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도 이 활동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 온 자원활동은 내가 직접 가꾸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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