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노동시간 관련 정책과 과로사
상태바
[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노동시간 관련 정책과 과로사
  • 하종강 교수(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 승인 2023.02.24 14: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종강 교수
하종강 교수
노동시간에 대한 인식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경선 시절부터 노동시간에 대해 매우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그래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주 52시간제도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서 근로자가 조건을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하더라.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일경제 인터뷰, 2021-07-19) 이 발언 내용이 물의를 빚자 바로 다음날 아래와 같은 해명을 했다.
 
“저는 검사로 일하면서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하여는 무관용 원칙으로 엄단하여 근로자를 보호하려 힘썼습니다. 당연하게도, 제가 부당노동행위를 허용하자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제가 만난 스타트업 현장의 청년들은 ‘평균적으로 주 52시간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게임개발 등 단기간의 집중 근로가 필요한 경우 주 52시간을 획일적으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집중적으로 일하고 그만큼 길게 쉬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 ‘현행 탄력근로제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업종의 특수성도 고려하고 노사정 합의에 따라 근로조건의 예외를 보다 폭넓게 인정해 달라’는 애로사항을 토로하였고, 저는 현장의 목소리와 문제의식에 공감하여 그대로 전달한 것입니다. (중략) 실제로 120시간씩 과로하자는 취지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발언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를 막 시작한 ‘정치 신인’ 시절에 한 주장이므로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고 정치적 경험을 쌓는 과정에서 변화할 수도 있겠으나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 개혁 방향으로 보면 그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정책에 반영되는 수순이 진행될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다.
 
‘주 40시간제’와 ‘부당노동행위’
우선 ‘주 52시간제’라는 용어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엄연히 2004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된 ‘주 40시간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이다. “한국 사회에도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돼 국민의 일상생활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고 언론이 앞다퉈 보도한 것이 벌써 20여 년 전이다. ‘52’라는 숫자를 굳이 사용하고 싶으면 ‘주 최대 52시간제’라고 표현해야 한다.
 
윤석열 당시 전 검찰총장의 노동시간에 대한 해명 발언 중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을 ‘부당노동행위’라고 표현한 점이다. ‘부당노동행위’는 노동조합법상의 용어로서 근로기준법과는 무관한 개념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당노동행위’를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행한 부당한 행위’라고 잘못 알고 있다. 언론이 ‘부당노동행위’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도 그렇게 잘못 사용된 경우들이 많다.
 
‘부동노동행위’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에 규정한 법률상 용어로서,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행한 노동조합과 관련한 부당한 행위들 중에서 ①불이익 취급 행위, ②반조합 계약 행위, ③단체교섭 거부 행위, ④지배 개입 및 경비 원조 행위, ⑤보복적 불이익 취급 행위를 이르는 것이지 막연히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행한 부당한 행위’를 뜻하는 용어가 아니다.
 
노동조합법을 공부할 때 도입부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내용이다. 일반 사람이라면 그렇게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큰 흉이 아닐 수 있으나 오랫동안 검사로서 일해 왔고 한 나라의 검찰총장을 지낸 사람이 그렇게 오해하고 있다는 것은 노동법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발언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노동시간 정책의 방향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20년 한국 노동자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1,908시간으로 OECD 국가 평균 1,687시간보다 221시간이나 더 많았다. 멕시코(2,124시간)와 코스타리카(1,913시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노동시간이다. 노동시간과 관련된 모든 정책들은 어떻게든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모아져야 하는 상황이지 노동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시킬 가능성이 있는 정책 방향을 제시할 단계는 결코 아니다.
 
이정식 노동부장관은 2022년 6월 23일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을 발표하면서 우선 추진과제로 ‘근로시간 제도 및 임금체계 개편’을 선정했다. (1)연장 근로시간 관리단위 확대, (2)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3)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 및 도입요건 완화, (4)직무·성과중심 임금체계로의 개편, (5) 스타트업·전문직 대상 이그젬션(Exemption) 제도 도입 등인데, 한결같이 모두 장시간 노동을 초래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이다.
 
2022년 7월 18일에는 노동시장 개혁의 우선 추진과제인 근로시간 제도 및 임금체계 개편을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발족했고, 이 연구회는 5개월 뒤인 12월 12일 ‘공정한 노동시장, 자유롭고 건강한 노동’을 위한 권고문을 발표했다. 권고문에서 ‘근로시간 개혁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근로자와 기업의 자율적인 근로시간 선택권 부여, (2)근로자의 건강권 강화 및 근로시간의 투명한 관리, (3)재충전과 생산성 제고를 위한 휴가 사용의 패러다임 전환, (4)기술 변화, 다양한 근로형태 확산에 맞춘 근로시간 제도의 현대화 등이다.
 
모두 한결같이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적용해 실제로 노동시간이 늘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겠다는 정책 방향 의지가 읽히는 내용들이다. 근로자와 기업의 자율적인 근로시간 선택권을 부여한다고 하지만 노동과 자본의 ‘기울어진 운동장’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현실적으로는 대다수의 사업장에서 경영진의 의지대로 관철될 가능성이 높다.
 
연구회는 연장노동 산정 단위를 주간이 아닌 월·분기·연 단위로 확대할 것을 권고했는데 노동계는 연장 노동시간을 월 단위로만 확대해도 주 최대 92시간의 노동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현행법상 1주 최대 연장노동시간은 12시간이고 한 달을 4.3주로 보면 한 달 최대 연장노동시간은 52시간(12시간×4.3주)이다. 52시간을 한 주에 몰아서 연장노동을 시키면 한 주에 92시간(40+52) 노동을 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정산 기간이 분기 3개월이나 연 단위로 확장되면 이론상으로는 주 120시간 노동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노동부에서는 노동자 건강권 보호 장치로 ‘근로일 종료 후 다음 근로일의 소정근로 개시 전’까지 사이에 11시간 연속휴식 제도가 있으므로 실제로 92시간 노동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노동부 정책 담당자는 하루 24시간에서 휴식시간 11시간을 제외하고, 또 4시간 근무마다 30분씩 보장하는 휴게시간 1시간 30분을 제외하면 하루 11.5시간 근무가 가능해 실제로 일주일 최대 노동시간은 주 7일 일하는 경우에는 80.5시간(11.5×7), 주 6일 일하는 경우에는 69시간(11.5×6)이라는 설명을 하기도 했다. 최대한 선의로 해석해도 주 40시간제를 실시하는 나라에서 그 두 배가 넘거나 두 배에 가까운 노동을 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라는 뜻이다.
 
장시간 노동과 노동자 건강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과로사에 관한 통계를 내지 않고 있지만, 국회에 보고된 자료 등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500명 이상이 업무상 과로로 사망하고 있다. 2021년에는 산재보험 적용 대상 노동자 509명, 공무원 30명, 군인 6명, 어선원 20명으로 모두 565명이 과로사한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2020년 497명에 비해 13.7% 늘어난 수치이다.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1인 자영업자, 택배 기사 등 특수고용형태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제외 플랫폼 노동자들은 이 통계에서 빠져 있기 때문에 실제 과로로 사망한 직장인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과로사’는 일본에서 먼저 부각된 개념으로서 일본은 2014년 <과로사 등 방지대책 추진법(이하 ‘과로사 방지법’>을 제정해 시행함으로써 장시간 노동 근절을 위한 법률상 개입 근거를 마련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과로사특별대책실’을 신설했고 매년 ‘과로사 백서’를 출간한다. 일본 정부는 2020년까지 과로사 제로(Zero) 달성을 위해 “주 노동시간 60시간 이상 노동자의 비율 5% 미만”, “연차유급휴가 취득률 70% 이상”을 목표로 제시하기도 했다.
 
일본의 과로사 방지법에서는 과로사를 “업무에 있어서의 과중한 부하에 의한 뇌혈관 질환 혹은 심장 질환을 원인으로 하는 사망 혹은 업무에 있어서의 강한 심리적 부하에 의한 정신장애를 원인으로 하는 자살에 의한 사망 또는 이들 뇌혈관 질환 또는 심장 질환 또는 정신 장애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과로사를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장시간 노동에 더해 야간 노동과 불규칙한 노동이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는 야간 노동을 발암추정 요인(2A군)으로 분류한 바 있다. 정부의 노동시간 정책이 예정대로 추진되면 장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가 야간 노동과 불규칙한 노동을 반복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동부 산하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이 과로를 판단하는 기준인 ‘고용노동부 고시 2020-155호’에 의하면 발병 전 1주일 이내의 업무시간이 발병 전 12주간의 1주일 평균보다 30퍼센트 이상 증가한 경우는 ‘단기 과로’로 분류돼 업무와 관련성이 있다고 본다. 평소 1주 평균 40시간 일하는 노동자라면, 특정 주에 몰아서 ‘바짝’ 12시간을 더 일하다 뇌·심혈관계 질병을 얻으면 단기 과로로 인정될 수 있다. 현행법에서 허용하는 주 최대 52시간만 일해도 과로 노동이 가능한 셈인데, 그 제한을 주 69시간 또는 80.5시간까지 연장하면 과로사가 증가할 것이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이다.
 
인류 역사의 진행 방향과 노동시간
인류 역사는 수천 년 동안 노동시간이 단축되는 역사였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노동자들이 조금씩 더 적게 일하면서 조금씩 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는 뜻이다. 그래서 노예제도는 철폐되고 머슴제도도 사라지게 된 것이다. 정부의 노동시간 정책은 자칫 이러한 인류 역사의 발전 방향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