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정리해고의 정당성 판단에 대한 기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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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정리해고의 정당성 판단에 대한 기준 (1)
  • 하종강 교수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 승인 2023.09.2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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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교수
하종강 교수
정리해고란 무엇인가?
피고용자 직장인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회사가 경영상의 이유로 부득이하게 하는 해고를 ‘정리해고’라 한다. 노동자의 잘못된 행위가 귀책 사유가 되어 발생하는 ‘징계해고’와 구별된다. 근로기준법에서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본래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는 정리해고 관련 규정이 없었다. 그렇다고 정리해고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감원’이라고 불러왔던 것이 바로 ‘정리해고’의 다른 표현이다. 근로기준법에 정리해고 조항이 없었던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 감원은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감원을 당한 직장인이 순순히 받아들이고 다른 직장을 알아본다든가 하면 더이상 노사 간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감원에 도저히 승복할 수 없어서 자신이 당한 감원이 과연 옳은 것인지 판단을 받아보려고 시도하면 그때부터는 그 정리해고의 정당성에 대한 판단을 누군가 해야 한다. 노동청이나 검찰이나 노동위원회를 거칠 수도 있지만 어떤 절차를 시도하든 최종적인 판단은 법원이 하게 된다.
 
정리해고의 정당성 판단 기준 –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
근로기준법에 정리해고에 관한 명문 규정이 없었던 오래전부터 대법원은 판결로써 그동안 감원 곧 정리해고에 관한 판단 기준을 확립해 왔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회사가 매우 심각한 경영상의 위기 상황에 놓여 있을 때만 그 정리해고가 합법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쟁점은 그 ‘매우 심각한 경영상의 위기’가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대법원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에 대한 해석을 “노동자를 해고하지 아니하면 기업이 도산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 한정하는 것”으로 엄격하게 해석해 왔다. 그 노동자에게 계속 임금을 지급하다가는 기업이 도산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만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회사에 인원이 조금 여유가 있다고 해서 남는 인원을 쉽게 감원(정리해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남아도는’ 직원에게 임금을 계속 지급하다가는 회사가 도산할 수밖에 없을 만큼 경영상 위기가 심각한 경우에만 그 감원(정리해고)이 합법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법률적으로는 정리해고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재판 과정에서 기업이 그 몇 명의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았다면 회사가 도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란 실제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을 그렇게 엄격하게 해석한 취지는, 임금은 피고용자 직장인의 유일한 생존의 근거인 만큼 최대한 고용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리해고에 대한 판단의 변화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 ‘세계화’를 통치 이념으로 내세웠다. 당시 정부는 ‘세계화’를 ‘Globalization’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Segyehwa’라는 고유명사로 표기했을 정도로 통치 이념으로 부각하려 노력했고, 그 핵심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경제적 효율을 극대화해 국가경쟁력을 높인다는 경제 중심 이데올로기였다. 기업의 이윤 추구가 다른 모든 가치 위에 군림하는 현상이 사회 전반에 확산하면서 정리해고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도 변화가 초래됐다.
 
그동안 “노동자를 해고하지 아니하면 기업이 도산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 한정하는 것”으로 엄격하게 해석했던 정리해고의 정당성 판단 기준을 크게 완화하는 판결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정리하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을 “기업의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경우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객관적으로 보아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될 때”로 폭넓게 해석하고, 구체적으로는 “기업의 인원 삭감 조치가 영업 성적의 악화라는 기업의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생산성의 향상, 경쟁력의 회복 내지 증강에 대처하기 위한 작업 형태의 변경, 신기술의 도입이라는 기술적인 이유와 그러한 기술 혁신에 따라 생기는 산업의 구조적 변화도 이유로 하여 실제 이루어지고 있고 또한 그럴 필요성이 충분히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반드시 기업의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것에 한정할 필요는 없고, 인원삭감이 객관적으로 보아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될 때”도 정리해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노동자 입장에서 볼 때는 엄청나게 불리한 쪽으로 법원의 해석이 바뀐 것이다.
 
정리해고 조항의 신설
경영계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김영삼 문민정부는 한 해가 저물어가는 1996년 12월 26일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신한국당 국회의원들을 관광버스에 태워 새벽에 국회에 등원시켜 기습적으로 노동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켰다. 11개의 법안이 통과되는 데 걸린 시간은 7분이 채 되지 않았고, 그 사이에 오세응 국회부의장은 의사봉을 48번 두드렸고, 신한국당 의원들은 여섯 차례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노동법 개정을 앞두고 가장 문제가 되었던 조항들은 소위 ‘3제 3금(三制 三禁)’이라고 불렸는데, 3제는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근로자파견제이며 3금은 전임자 임금지급금지, 제3자 개입금지, 공무원 및 교사의 단결권 금지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단연 ‘정리해고제’였다.
 
앞에서 설명한 정리해고에 대한 법원의 판결 중에서 노동자에게 가장 불리한 판결의 내용이 거의 그대로 근로기준법의 정리해고 조항으로 신설됐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은 직종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언제라도 쉽게 해고될 수 있는 위기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광범위한 저항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총파업을 결의했고 야 3당은 ‘반독재투쟁공동위원회’를 설립했다. 이후 40일 동안 “해방 이후 최대 규모”라고 표현될 만큼 광범위한 국민적 저항이 전국에 걸쳐 발생하자 결국 김영삼 대통령은 1997년 1월 21일, 야당 대표인 김대중, 김종필과 함께 영수회담을 한 뒤 노동법 개정을 무효화하고 3월 10일에 여야가 합의한 새로운 노동법 개정안을 만들게 된다. 그 개정안에 신설된 정리해고 조항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설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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