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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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교수의 노동법 이야기]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논란
  • 하종강 교수(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 승인 2023.12.2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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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교수
하종강 교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월 1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3조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정식 노동부장관은 그 이유를 “산업현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전체 국민과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저해할 것이 자명한 개정안을 외면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지만, 그동안 경영계에서 ‘노란봉투법’을 ‘파업 조장법’이라고 부르며 비난해 온 주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가 빈발하는 이유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조(손해배상 청구의 제한)에서는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라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실제로 파업으로 인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 조항이 어디까지나 합법적 쟁의행위에 대해서만 적용될 뿐, 불법적 쟁의행위까지 보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이하 ‘파업’이라고 칭함)가 불법이 되는 대표적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노동법상 사용자의 범위가 너무 좁게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노동부와 검찰과 법원에서는 ‘사용자’를 직접 고용 관계를 맺고 있는 사업주만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원청회사는 노동법상의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하청이나 파견 노동자들이 원청회사에 교섭을 요구하면서 파업을 하면 법률상 불법 파업에 될 수밖에 없다.
 
둘째, 단체교섭 대상 사항의 범위를 너무 좁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법 제2조(정의)에서는 ‘노동쟁의’를 ”노동조합과 사용자 간에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위 조문 중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이 바로 단체교섭 대상 사항인데, 노동조합의 파업은 이 단체교섭 대상 사항에 관한 요구를 할 때만 합법적 파업으로 본다. 예를 들어, 공기업 민영화나 기업 인수·합병에 대해 노동조합이 회사에 교섭을 요구하면서 파업을 하면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등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이 아니라고 보어 불법 파업을 간주한다. 민영화에 반대하는 철도노조의 파업이나 기업 인수합병에 따른 정리해고에 반대한 쌍용차노조의 파업이 불법 파업이 된 이유는 그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의 내용
지난 11월 9일 국회에서 통과된 ‘노란봉투법’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같은 법 제2조(정의)의 2호 ‘사용자’ 규정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추가했다. “이 경우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
 
그렇게 되면 하청이나 파견 등 간접 고용 노동자들이 원청회사를 상대로 교섭을 요청할 수 있고 배달이나 택배 등 플랫폼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을 설립한 뒤 플랫폼 기업을 상대로 교섭을 요청할 수 있다. 2010년 대법원이 ‘HD현대중공업이 하청 노동자의 노조법상 사용자’라고 본 판례가 있다. 
 
둘째, 같은 법 제2조(정의)의 5호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부분에서 ‘결정’이란 단어를 삭제해 “근로조건에 관한”으로 바꾸었다. 그렇게 되면 정리해고나 민영화 반대 파업도 합법적으로 가능해진다. 이 조항의 ‘결정’이라는 단어는 1997년 노조법을 새로 만들면서 추가됐던 것이고 이에 대해 그동안 논란이 계속돼왔다. 따라서 불합리한 내용을 바로잡아 원점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지 생면부지의 이상한 법을 새로 만든 것은 아니다.
 
셋째, 같은 법 제3조(손해배상 청구의 제한)에 다음과 같은 항목을 추가하였다. “② 법원은 단체교섭,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각 손해의 배상 의무자별로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여야 한다.
 
지금까지는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노동조합 간부나 조합원들을 뭉뚱그려서 피고로 선정하고 소송을 제기한 뒤 “피고들은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라는 판결을 받으면 회사는 조합원 중 아무에게서나 손해액 전액을 배상을 받을 수 있었다. 위와 같이 개정되면 피고인들 개별적으로 파업에 대한 책임을 일일이 따로 산정해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이미 대법원에서는 지난 6월 15일 현대자동차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간의 손해배상 청구 사건(2017 다 46274호)에서 그와 같은 내용의 판결을 한 바 있다.
 
어떻게 볼 것인가?
경영계의 ‘노란봉투법’에 대한 우려는 그동안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빈발하고 그것이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옥죄는 수단으로 널리 사용돼 온 관행을 정상적인 상황으로 전제하고 제기하는 내용 들이다.
 
해외에서는 입법 사례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파업에 따른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가 거의 없기때문에 굳이 제한할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1982년 프랑스에서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입법 예가 있었지만, 헌법위원회의 위헌 결정으로 시행되지는 못했다. 프랑스에서는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가 법률상 가능할 뿐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기업의 영업 비밀을 모두 공개해야 할 만큼 재판 과정에서 손해액을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일체를 금지하는 것이 ‘과잉 금지’에 해당한다고 본 것일 뿐이다.
 
경영계는 또한 다른 나라에서는 노동조합들이 불법 파업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처럼 노동자들의 파업을 일일이 꼬투리 잡아 불법 파업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파업이란 노동자가 자본가와 맺었던 계약을 파기하고 노동 제공 의무를 거부하는 것으로서 이미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것인 만큼 파업에 대해 합법이나 불법성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보는 학설도 있다.
 
‘노란봉투법’이란 노사 간의 힘의 균형 상태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지나치게 불균형한 한국 노사관계 상황을 바로잡자는 취지이지 노동자들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인 편향된 개정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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