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치과위생사협회 한재희 고문 “후회 없이 살아온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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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치과위생사협회 한재희 고문 “후회 없이 살아온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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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2.2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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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것을 돌아보고 새것을 그려나가는 데 연륜(年輪)에서 우러나오는 한마디 가르침보다 좋은 것이 있을까.

40년이 넘는 원로 치과위생사로서 치위생계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조력자로서 든든한 지원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대한치과위생사협회 한재희(66)고문.

그는 지난 1970년 국내 치위생 학문의 시초인 연세대학교 의학기술수련원 치과위생과(4회)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건강센터 치과와 청아치과 등에서 36년간 치과위생사로서 활동했다.

또한 1981년 제3대 대한치과위생사협회장을 역임하고 협회 법인설립허가(제833호, 보건사회부장관)를 비롯해 종합학술대회 개최, 국제치위생심포지엄 참가 등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치과위생사분야를 개척하며 다수의 업적을 남겼다.

지난 18일 이화여대 부근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한재희 고문은 “40년 전은 그렇게 오래전 일 같지 않은데 요즘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 후배들이 많아진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밝혔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눈가에는 종종 눈물이 어렸다. 그에게서 치과위생사를 향한 `가족' 같은 애틋함이 묻어났다.


■당시 국내에선 불모지였던 치과위생과를 택했다.

“선배 동기가 몇 없으니 외롭긴 했다. 당시 우리 과는 의과대학 시설을 이용했는데, 강의 서적이며 내용까지 통영어로만 진행하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저녁으로 이어지는 강의에 어찌나 벅차던지. 코피까지 흘려가면서, 정말 다시 돌아봐도 대단하다 싶을 만큼 공부했다. 엄하고 무섭게 배운 덕분에 기본에 충실하고 업무에도 철저하게 돼 어딜 가서도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행복한 기억이다.”

■협회장이 된 배경은?

“학교 후배인 김숙향 초대회장이 나를 찾아와 협회장을 맡아주길 요청했다. 김 회장은 당시 임신한 몸으로도 협회를 끌어가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그 모습에서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협회와 같은 조직의 장이 되려면, 희생과 자기헌신이 없으면 안 된다. 그 희생이 바로 오늘의 대한치과위생사협회를 만들었다고 본다.”

■당시 협회 사무국 모습은 어땠나.

“치과의사협회 회관 귀퉁이에 있는 베란다와 같은 협소한 공간에서 후배인 직원과 나, 이렇게 2명이 사무국을 운영했다. 겨울이면 한기가 들어 정말 추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감당했나 싶다. 이후 열심히 모은 회비로 종로에 사무국을 마련할 수 있었다.”

■협회 법인설립 허가, 국제치위생심포지엄 최초 참가 등의 제법 굵직한 성과를 바탕으로 회장 임기를 마쳤다.

“법인설립 허가는 복지부와 여러 번 소통을 거친 끝에 호응을 얻으며 비교적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당시 협회에 대한 치과위생사들의 호응도 컸다. 치과위생사 대부분이 협회를 유익창출과 권익증진을 위한 구심점이라고 여겼고 협회 가입을 당연시했다. 협회행사 규모도 차츰 커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에서 종합학술대회를 열고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총회를 가졌다. 1983년 7월에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9th International Symposium on Dental Hygiene에 회장인 나와 부회장, 회원 1명이 국내 최초로 참가했다.”

■임상 치과위생사로서 외길을 걸어왔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지난 2009년에 30년 6개월간 근무한 이화여대 건강센터 치과에서 61세로 정년퇴직하기까지, 결혼 후 4년을 제외하면 36년간 치과위생사로서 활동했다. 우리가 취업할 당시 치과에서는 치과위생사 업무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내가 가진 좋은 의료기술을 베풀 수 있는 환경에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었다. 주부로서 가정과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일하던 치과를 통해 만난 남편은 내 일을 존중하고 내 직업관을 높이 평가하며 가장 큰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자신의 이름을 딴 `한재희 봉사상'이 올해로 12년째를 맞았다.

“치과위생사 원로가 되어 뭔가 기여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치과위생사의 봉사와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지난 2002년부터 매년 종합학술대회를 통해 상금을 전달하고 있고, 최근에는 그 액수를 더 높이도록 주문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후배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에서다.”      

■치과위생사로서 40여 년이 흘렀다. 지난 세월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듯한데, 치과위생사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지난 세월에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가 없다. 후배들 역시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며, 항상 당당하고 담대하게 살아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더불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날마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타인을 위해 희생을 실천하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후배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진정한 해피바이러스 치과위생사로….치과 해피바이러스는 치과위생사가 본래 담당하던 것 아닌가(웃음).”


명사의 추천 Book 그리스인 조르바

〈진정한 자유에 대한 추구〉

세상에 둘도 없는 자유인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다. 한재희 고문은 진정한 자유인의 삶을 추구한 작가의 묘비를 찾아 그의 지난 삶을 돌아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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